지난 1985년 6월16일. 제7경주 1200m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었다.
"제7경주에 5번와 7번마가 입상, 복승식 배당률이 30배 이상이 나오도록 승부를 조작해주지 않으면 경마장을 폭파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 때문에 경마장엔 정사복 경찰이 출동, 철통경비를 펼치며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협박범이 지목한 7번마 '이상향'이 초반부터 단독선두로 질주하고 있는데 뒷전에서 달리던 5번마 '문경세재'가 4코너를 돌아 치고 나오더니 선두를 뺏으며 결승선을 통과했다.
마사회는 즉각 전 발매창구에 비상을 걸었다. 적중 마권을 들고 배당금을 타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즉시 비상벨을 누르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숨죽이고 기다리는데 어느 창구에서 벨이 울렸다.
마사회 보안요원들과 경찰이 즉시 그 창구로 달려가보니 웬 남자가 10만원 짜리 적중마권 3장을 들고 배당금을 타러와 있었다.
당시 30만원이면 왠만한 기업 중견사원 한달치 월급에 해당되는 큰 돈이다. 그 정도를 베팅해서 적중했다면 뭔가 있는게 분명해보였다.
경찰은 그를 연행, 조사했다.
그의 입에서 충격적인 진술이 흘러나왔다.
그는 "김모 기수로부터 자신의 것과 동료 기수 몫으로 5-7번 마권에 10만원씩 20만원을 사달라는 부탁을 받고 내돈 10만원을 보태 30만원을 베팅한 것"이라고 진술했다.
김모 기수의 동료 기수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7번마 '이상향'에 기승한 기수였다. 그는 최다승 기록을 스스로 갱신해나가는 당대제일의 승부사였다.
기수 낚시동호회는 월요일인 85년 6월17일 충남 장항으로 바다낚시를 떠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모자라는 비용이 문제였다. 회장인 백모 기수는 고민 끝에 베팅으로 자금을 마련키로 했다.
낚시를 떠나기 하루 전인 그날 제7경주에 자신이 기승하는 7번마 '이상향'과 5번마 '문경새재'에 복승식 마권 10만원을 사기로 하고, 몰래 베팅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동료 김 기수에게 10만원을 건네주고 베팅을 부탁했다.
이들은 협박범이 제7경주에 '5-7'번 마권에 복승식 30배 이상 터지도록 조작해달라고 요구한 사실을 알리 없었다.
김 기수는 자신의 돈 10만원을 보태 지인에게 부탁, 베팅한 것이 협박범의 요구와 우연찮게 맞아떨어져 적발된 것이다.
마사회 직원과 기수 조교사 관리사 등 경마 관계자들은 베팅을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지만 그 시절엔 암암리에 베팅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백 기수는 당대 최정상 기수로서 수많은 부정의 유혹과 협박을 받았지만 모두 뿌리치고 베팅과도 담을 쌓고 지내며 승부에만 몰두하다가 단 한번 베팅한게 적발돼 면허취소와 경마관여금지 처분을 받아 당시 국내 최다승(624승), 최다출전(3660전) 기록에 마침표를 찍고 경마사 속으로 사라졌다.
평소 같으면 면허정지 처분 정도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협박범의 요구에 일치하는 결과가 나온 당사자인 기수가 베팅한게 '뒤로 넘어지고 코가 깨진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는 이듬해 6월 그리스로 떠났다. 그의 기량을 높이 평가했던 그리스의 남승현 마주(현 남촌컨트리클럽 회장)의 주선으로 국내 첫 해외진출 기수 기록을 세운 것이다.
서양 기수들의 견제를 뿌리치고 서서히 자리를 잡아나갔으나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 2년5개월만에 귀국했다.
그뒤 예상지를 창간했으나 경마관여금지 처분을 받았다는 이유로 폐간돼 프리랜서 예상가로 어렵게 살아가고 있다.
화려했던 스타 기수가 단 한번의 실수로 이처럼 가혹한 형벌 속에 평생을 지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기수들 사이에 "백 선배 같은 기수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적지 않을 정도로 그의 탁월한 기승술은 아직도 높이 평가되고 있다. <전 스포츠조선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