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절벽의 시대임에도 값비싼 고급 디저트는 오히려 잘 팔린다. 일종의 불황형 소비 행태인 '작은 사치' 트렌드 때문이다. 내 집 장만 등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엄두도 못 내니, 주변의 작은 일에 아낌없이 돈을 쓰면서 자기만족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취향에 맞춰 업계 또한 고가의 디저트 뷔페나 5만원짜리 금 도금 볼펜 등 작은 사치를 누릴 수 있는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그랜드워커힐은 지난달부터 5월 초까지 금·토·일요일 딸기 뷔페 '베리베리스트로베리'를 운영하고 있다. 성인 1인당 가격이 무려 6만3000원이나 되지만, 매주 100% 예약이 차고 대기 예약까지 받고 있다.
그랜드워커힐 관계자는 "주 고객은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소비하면서 맛을 즐기려는 20∼30대 여성과 연인들"이리며 "올해로 10년째 딸기 뷔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매년 방문객이 30%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디저트 열풍은 백화점 내 '작은 사치' 품목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프랑스 유명 마카롱 브랜드 '라뒤레'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디저트카페 '라뒤레살롱드떼'를 열었다. 이곳의 마카롱 1개 가격이 4500원, 오믈렛은 1만9000원, 차는 1만3000원대다. 마카롱과 차 한 잔만 주문해도 웬만한 식사 가격보다 높다. 그렇지만 프랑스 본사에서 공수해 온 도자기와 식기를 쓰고 흰 대리석과 청동 샹들리에 등으로 화려하게 인테리어를 한 이 카페를 찾는 방문객 수는 1일 평균 100여 명에 달한다,
디저트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현대백화점은 미국의 유명 컵케이크 전문점 '매그놀리아'를 2015년 처음으로 판교점에 입점 시킨 데 이어 무역센터점, 압구정본점 등 3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컵케이크가 한 개 가격이 4000원에서 5000원으로 비싸지만, 판교점 매출이 월 3억원에 달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디저트 판매는 2014년 전년 대비 22.7%, 2015년 23.2%, 2016년 24.5% 각각 증가하면서 매년 20%대 성장률을 이어갔다"며 "고객들이 백화점을 찾아오게 하기 위해서라도 화제가 될 만한 고급 디저트 브랜드를 입점 시키려는 업계 노력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작은 사치로 누리는 자기만족…SNS 관심 문화도 한몫
요즘 신조어 중에 '탕진잼'이란 말이 있다. 이 표현은 재물을 다 써서 없앤다는 '탕진'과 재미를 뜻하는 '잼'을 합쳐 만든 말이다. 저금리 시대에 푼 둔 모아봤자 아무 소용없으니 가진 돈을 다 쓰고 즐기자는 거다.
이같은 소비심리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스티커나 문구를 수십개 '사재기'해서 용돈을 다 써버리거나 정반대로 5만원짜리 볼펜 등 과시형 제품에 아낌없이 지갑을 열기도 한다. 이들은 관련 상품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에 올린 뒤 온라인 공간에서 적극적인 관심을 이끌어내면서 또 다른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소비 심리에 주목해 문구업체 모나미는 기존 '153 볼펜'을 진짜 금으로 도금한 프리미엄 볼펜 '153 골드'를 지난달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153 볼펜'의 가격은 300원이다. 하지만 '153 골드'는 5만원으로 일반 볼펜의 166배에 달하는 가격이다. 그러나 '작은 사치'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시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 모나미 측 판단이다. 모나미는 작년 6종이던 프리미엄 볼펜 모델을 올해 8종으로 늘렸다. 지난해 고급 제품군 판매가 두 배 이상 늘어나서다.
필기구뿐만이 아니다. 노트에도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이탈리아 브랜드 몰스킨의 국내 매출은 2015년 12.1%, 지난해 22.2%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몰스킨 노트는 한 권에 2만~4만원에 이른다.
이외에 적은 비용으로 특급 호텔 분위기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을 위해 호텔들도 적극적으로 관련 상품을 내놓고 있다. 더플라자호텔은 P컬렉션이라는 이름으로 디퓨저(방향제) 상품을 출시했다. 이 호텔을 방문하면 맡을 수 있는 유칼립투스 향을 담은 디퓨저로, 100㎖짜리가 4만 원에 팔린다. 이 또한 결코 저렴한 가격대는 아니지만 특급 호텔에 온 듯한 기분을 느끼고자 하는 이들의 구매가 이어지고 있다. 이외에 웨스틴조선호텔과 그랜드워커힐호텔은 각각 호텔 이름을 내건 김치를 판매, 인기를 끌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한정판 제품 등을 손에 넣은 뒤 SNS에서 주목을 받는 쾌감 또한 요즘 소비자들을 움직이는 트렌드 중 하나"라며 "갑갑한 현실 속에서 작은 사치나 관심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나면서 관련 품목 매출이 계속 올라가고 있다"며 라고 분석했다. 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