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5위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싸늘하다. 신동주·동빈 형제들간 후계를 둘러싼 갈등이 볼썽사나운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통하지 않고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을 이용, 전 근대적인 방법으로 경영권 찬탈을 노리는가하면, 이에 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경영 실적을 부풀리는 등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 말 한마디로 좌지우지되는 전 근대적인 롯데
이번 '형제의 난'으로 신격호 총괄회장의 밀실 황제식 경영이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났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27일 일본 도쿄 롯데홀딩스 본사에서 주요 임직원 10여명을 갑자기 불러 모아 손가락으로 신동빈 회장을 비롯한 6명의 이름을 가리키며 해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반적으로 등기임원이사 이사를 해임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절차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같은 신 총괄회장의 구두지시가 법적 절차와는 관계없이 그동안 롯데그룹의 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 관행을 방증해주는 것이다.
이런 롯데의 전 근대적인 경영 행태에 대해 네티즌들은 댓글을 통해 "연매출 83조원에 임직원 10만명, 80여개의 계열사를 갖고 있는 재벌이 무슨 구멍가게처럼 운영하냐"며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신동빈 회장, 중국 손실 1조 사실로 드러나
이처럼 신격호 총괄회장을 등에 업는 데 그치지 않고, 신동주 전 부회장은 "중국 사업에서 1조원의 손실을 냈다"며 신동빈 회장의 경영 능력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이는 신격호 총괄회장이 후계자로 신동빈 회장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으로 마음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조원 손실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롯데그룹의 주요 상장사인 롯데쇼핑·롯데제과·롯데칠성음료·롯데케미칼의 중국과 홍콩 법인들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총 1조1513억 원의 적자를 낸 것으로 집계됐다. 연도별 적자액은 2011년 927억원, 2012년 2508억원, 2013년 2270억원, 2014년 5808억원 등으로 해가 갈수로 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런 신동주 전 부회장의 공세에 대해 한국 롯데를 장악하고 있는 신동빈 회장은 측근들을 통해 한국 내에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원준 롯데쇼핑 사장은 지난달 31일 '중국사업 1조원 손실설'과 관련, "롯데백화점의 2011∼2014년 누적 영업적자는 EBITDA 기준으로 1600억원, 롯데그룹 전체는 3200억원"이라고 선을 그었다. EBITDA(Earnings Before Interest, Taxes, Depreciation and Amortization)는 기업이 영업 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다. EBITDA는 법인세·이자비용·감가상골·무형자산상골를 차감하기 전의 영업이익으로, 실제 영업이익과 순이익과는 차이가 있다. 회계 전문가는 "대체로 EBITDA보다 영업이익, 순이익을 기준으로 할 때 적자 규모가 더 커진다"고 반박하고 있다.
또 한국 롯데 측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동빈 회장이 2004년 경영에 처음 참여할 때 매출 32조였던 한국 롯데를 현재 자산만 83조원인 그룹으로 성장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 측이 중국 손실 1조원을 EBITDA로 희석하고, 한국 롯데를 성장시킨 점을 부각하는 등 여론을 등을 업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키운 것은 맞지만, 롯데쇼핑 등을 상장하면서 덩치가 급격히 커진 것도 있다"면서 "한·일간 기업문화도 다르고, 일본 롯데는 모두 비상장회사라서 단순히 매출과 자산 등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이 1990년 이후 제로성장을 한 '잃어버린 20년'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이 기간 한국은 꾸준히 성장을 했기에 한·일간 실적을 절대치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다.
재벌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는 롯대
이같은 롯데 신동주·신동빈 친형제간 갈등은 재벌 폐해를 여지없이 드러내면서 여론의 화살을 맞고 있다. 불투명하게 장막에 쌓여있는 기업 지배구조, 창업주의 자기마음대로식 독단적인 황제경영 등이 줄줄이 노출되고 있는 것.
아울러 그룹 후계자 자리를 놓고 부자·친형제·친족 등간 피도 눈물도 없는 진흙탕싸움도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은 이번 '형제의 난'에서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이사에서 해임하는 등 '패륜'적인 모습을 보였다. 신 총괄회장은 지난달 31일 KBS가 공개한 육성 녹음에서 "쓰쿠다(다카유키 사장)가 무슨 일을 하고 있나"라고 신 전 부회장에게 물었고, 신 전 부회장이 "일본 롯데 사장을 맡고 있다"고 답하자 다시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되물었다. 이어 "아키오(신동빈 회장)도 그만두게 했잖아"라고 덧붙였다. 즉, 지난달 27일 자신의 의사로 신동빈 회장을 해임한 것을 재확인했다.
그럼에도 신동빈 회장이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아버지인 신격호 총괄회장을 다음날인 지난달 28일 대표이사에서 해임했다. 이를 놓고 일부 네티즌은 신동빈 회장에게 "경영권을 잡기 위해 패륜을 저지른 것이 아니냐"는 비난을 퍼붓고 있다. 증권정보제공업체 대표는 "유교적인 분위기가 강한 한국 내에서 '패륜'은 상당히 치명적이라 신동빈 회장이 한·일 롯데의 경영권을 장악하더라도 이미지 회복에는 엄청난 공을 들여야 할 것"이라며 "이것이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롯데 제품이 팔리지 않아 실적이 나빠지면 당연히 주가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형인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에 한·일 롯데 경영권을 잡으려는 신 전 부회장이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하면서도 한국 롯데 최고경영자(CEO)에 오르려는 재벌의 황제식 경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 KBS가 공개한 신 전 부회장과 신격호 총괄회장의 대화 육성 녹음파일에서 신 전 회장은 동생 신 회장을 일본 이름인 '아키오(昭夫)'로 불렀고, 신 총괄회장에겐 한국말로 아버지를 뜻하는 '오또상(おとうさん)'이라고 지칭했다. 일본 롯데 보다 20배 이상 큰 한국 롯데의 회장직을 맡으려는 사람이 정작 한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실에 증권가는 물론이고 온라인상에서 어처구니없다는 분위기다. 증권업계 관계자도 "한국지엠 등 외국계 기업에는 한국어를 못하는 CEO가 가끔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들은 경영능력이 검증된 임직원을 본사에서 보내는 것이어서 롯데의 신동주 전 부회장 사례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말했다.
경영권 '키'는 역시 신격호 총괄회장이 쥐고 있어
결국 '형제의 난'의 최종 종착지는 일본 롯데홀딩스의 주주총회로 귀결되고 있다.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빈 회장이 기존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면 결국 표 대결로 승부가 갈릴 수밖에 없는 것. 일단 지난달 28일 신동빈 회장 주도로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 총괄회장을 명예회장으로 추대한 것과 관련해 정관 변경의 필요성이 있는 만큼 주주총회 개최는 불가피하다. 아울러 이 자리에서 롯데홀딩스 임원 교체 안건이 튀어나올 수 있고, 그와 관련한 주총의 선택에 따라 롯데그룹의 후계구도가 바뀔 수 있다. 이 주총에서의 표를 얻기 위해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지난달 31일 조부 제사에 불참하면서까지 며칠째 일본에 체류하는 건 주총 표 대결을 염두에 두고 롯데홀딩스 지분을 가진 친족과 주주의 표심을 관리하려는 의도로 풀이되고 있다.
다만, 최근 흐름을 보면 애초 신동주·동빈 '형제의 난'에서 신격호·동빈 부자 갈등으로 바뀌는 모양새다. 신 전 부회장이 94살 노령의 신격호 총괄회장의 의중을 한국·일본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하는 형국이지만, 신 총괄회장의 개입이 본격화되면서 부자 대결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이렇게 갈 경우 주총 표 대결에서 현재까지 약간 앞서는 것으로 알려진 신동빈 회장이 오히려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 일부 주주의 표가 신 총괄회장 의중에 있는 신동주 전 부회장에게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 이런 이유로 표 대결까지 가지 않고 신 회장이 신 총괄회장을 찾아가 타협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롯데 사태, 광복절 특사에 불똥?
한편 재계는 최근 롯데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오너가의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채 사그라지기 전에 또다시 오너가가 논란의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또한 이같은 분위기가 자칫 반재벌 정서로 확산, 기업인에 대한 광복절특사에 악영향으로 작용할까 좌불안석하는 분위기다.
특히 총수가 사면 논의 대상에 포함된 기업들은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실제는 속앓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온라인에는 롯데그룹처럼 경영권 다툼에 골몰하는 재벌들을 사면해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하냐는 부정적인 여론이 힘을 받고 있다.
현재 특사 및 가석방 대상으로 형기의 절반 이상을 복역한 SK그룹의 최태원·최재원 형제, 구본상 전 LIG 넥스원 부회장과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또 아직 재판이 끝나지 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에도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조심스럽다"면서 "이번 롯데그룹 사태와 광복절 특사는 별개의 문제로 보고 있지만 상황이 유동적이라서 일단은 지켜볼 뿐"이라고 밝혔다. 장종호·박종권 기자 bellho@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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