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잇몸이 붓는 증상이 나타난 이 모씨(54)는 약국에서 잇몸약을 구입, 복용했다. 그러나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고 오히려 잇몸에 덩어리가 생긴 듯 더 부풀어 오르고 피까지 나기 시작했다. 치과 검진 결과 잇몸 증식과 출혈의 원인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었다. 복용 중인 고혈압약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의사의 권유대로 고혈압약을 다른 종류로 바꿔보니 붓기가 가라앉았다"며 "잇몸 문제가 고혈압약 때문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잇몸 증식은 치주질환, 불규칙한 치열, 코 대신 입으로 숨 쉬는 구호흡, 불량 보철물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나타날 수 있는데, 약물복용 때문인 경우가 가장 많다. 고혈압치료제인 베타칼슘차단제, 장기이식 수술 후 복용하는 면역억제제 사이클로스포린, 간질 치료제인 항경련제 페니토인 등을 복용하는 환자 중 일부에서 잇몸 증식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약을 복용한 지 3개월 정도 지나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고혈압을 갖고 있는 중장년층이 많은 점을 미뤄 볼 때 여러 약물 중 베타칼슘차단제 복용으로 인한 잇몸증식 증상을 겪는 환자가 상당할 것으로 추측 된다. 이미 만성 치주질환을 앓고 있는 중장년 환자가 고혈압약을 복용하고 있다면 잇몸이 증식해 잇몸염증을 더욱 악화시킬 우려가 있다. 잇몸이 지나치게 커져버리면 치태(플라그)를 깨끗이 제거하기 힘들어져서다.
베타칼슘차단제는 칼슘이 세포 내에 유입되는 것을 차단해 혈압을 내리는 원리다. 혈관이 좁아지는 것을 막아 정상 혈압을 유지하게 하는 베타칼슘차단제는 혈압을 내리는 작용이 완만해 노인에게 적합하며 협심증 환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변욱 병원장은 "치태가 있는 사람, 치주질환이 있는 사람, 잇몸이 패인 사람 등이 베타칼슘차단제를 장기 복용하면 잇몸 주위에 약물이 고농도로 축적되면서 잇몸증식이 유발된다"며 "이 약물은 잇몸의 면역물질이 병균은 죽이지 못하고 잇몸만 비정상적으로 증식시키도록 기능을 변질시킨다"고 설명했다.
잇몸증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잇몸을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꼼꼼한 양치질로 치태가 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치과 검진 시에는 잇몸증식의 원인을 확인한다. 약물 부작용에 따른 잇몸증식인 경우에는 다른 약물로 대체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불량보철물, 치태와 치석에 원인이 있을 때는 이에 맞는 치과 치료를 해야 한다.
이미 잇몸이 과도하게 증식됐을 때는 외과적인 방법으로 잇몸 부피를 줄일 수 있다. 최근에는 메스 없이 레이저를 이용해 잇몸을 효과적으로 제거한다. 레이저를 사용하기 때문에 과거 메스를 이용한 시술에 비해 간편하고, 통증과 출혈이 거의 없으며 회복기간도 1~2일 정도로 짧다.
임정식 기자 dad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