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고발]KB국민은행 대출서류 조작 일파만파, 도대체 몇 건?

박재호 기자

기사입력 2012-08-24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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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덕 KB국민은행장

성인이 일상생활에서 사인을 제일 많이 하는 곳은? 은행이다. 통장을 개설하거나 신용카드를 만들 때 서너장의 서류마다 이름을 적고 사인한다. 복잡한 서류 문구를 꼼꼼하게 따지기도 하지만 대부분 궁금한 점은 직원에게 물어본다. 아예 직원들이 형광펜으로 선을 그어 놓은 곳에 곧바로 사인만 하는 경우도 많다. 내 돈이 걸려 있지만 은행 직원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지난달 터진 KB국민은행 집단대출 서류 조작 사건 충격은 이래서 컸다.

처음에는 은행직원이 대출서류에 손을 댔다는 사실에 긴가민가 했다. 국내 선두권 은행의 믿기 힘든 대출 서류 조작 파문은 이후 더 커졌다. KB국민은행과 금융당국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지난달말부터 880여개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중도금 집단대출 서류를 조사하고 있는데 이달말이나 9월초 쯤 최종 조사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조작 건수가 확인된 것만 1000여건, 최대 3000건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중이어서 단언할 수 없다. 겸허한 마음으로 조사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잘못의 경중을 떠나 KB국민은행 직원들이 임의로 고객의 서류를 조작했다는 사실이다. 고객서명과 기간에 손을 대고 대출금액도 위조했다. 물론 금융 당국의 추가조사 결과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는 다른 은행에서도 유사 사례가 발견됐다고는 하지만 KB국민은행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어이없다.

이번 대출 서류 조작은 거의 집단대출이었다. 아파트 분양을 받을 때 모델하우스에서 이뤄지는 중도금 대출로 기간은 보통 입주 예정 후 3개월까지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입주기간과 대출기간이 차이가 날 때가 많다. 이럴 경우 서류를 다시 작성해야 하지만 KB국민은행은 직원들이 편의대로 서류를 조작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당연히 서류를 다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이 전국에 퍼져 있어 오시라고 해도 오시지 않는 경우가 많다보니 이런 일을 벌였다. 송구스럽다"고 했다. 하지만 전화상으로도 서류를 바꾼 사실을 안내하지 않았다는 점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임의적인 서류 조작을 도저히 용인할 수 없는 대목이다.

중도권 집단대출은 통상 입주 전까지 시행사가 분양받은 이들을 대신해 이자를 납부한다. 중도금을 내는 시점에서는 아파트 소유는 시행사다. 이후 입주가 시작되면 소유권이 바뀐다. 중도금 대출 역시 개인 담보대출로 전환된다. 최근 부동산 경기가 나빠지면서 입주시기가 지났는데도 입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분양을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이번 사태를 키웠다. 입주일이 되도 중도금 집단대출이 개인담보대출로 전환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중도금 집단대출 기간이 남았다고 여겼는데 갑작스럽게 기간이 끝났다며 연체 이자가 발생해 민원이 제기됐고, 이 와중에 대출서류 조작이 발견됐다.

자금을 다루는 은행의 생명은 신뢰와 정확함이다. 한 금융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서류 조작은 결코 있어선 안되는 일이지만 존재 기반이 신뢰인 금융권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소비자단체들은 향후 집단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지난 1일 KB국민은행은 고객 중심의 정도경영 실천을 선언했다. CD금리 담합 의혹에 이어 대출서류 조작 건까지 터져 비리집단으로 몰린 뒤였다. 민병덕 국민은행을 비롯한 경영진과 부점장 1260명 전원이 고객 중심의 정도경영을 하겠다고 했다. KB국민은행이 사회구성원과 고객, 임직원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새로운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서약했다.

하지만 이번 서류 조작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냉담하다. 정도경영 선언에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다. KB국민은행은 이번 사건처리에서 우선 발뺌하고, 이후엔 의미를 축소하고, 문제가 커지자 업계 관행이었음을 부각시켰다. 최종 조사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환골탈태, 뼈를 깎는 자성이 요구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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