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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 여제' 박인비(27·KB금융그룹)가 통산 7번째로 여자골프 커리어 그랜드슬램의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13번 홀(파4)까지 선두 고진영에게 3타 차로 뒤져 올해도 브리티시오픈 우승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나 평소에도 이 대회 우승에 강한 의지를 내보였던 박인비의 집념이 역전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박인비는 14번 홀(파5)에서 7m 가까운 거리에서 이글 퍼트를 성공해 한꺼번에 두 타를 줄였고 이때 13번 홀에 있던 고진영은 한 타를 잃으면서 순식간에 동타가 됐다. 고진영도 파5 홀인 14번 홀에서 반격을 노렸으나 파에 그쳤고 오히려 박인비가 16번 홀(파4)에서 한 타를 더 줄여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가면서 고진영을 압박했다. 승부가 갈린 것은 고진영이 16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기록했을 때였다. 고진영의 두 번째 샷이 그린 앞 개울로 향하면서 박인비의 커리어 그랜드 슬램 달성은 사실상 확정됐다.
이로써 박인비는 LPGA 투어 메이저대회 6승을 포함해 통산 16승을 수확했다. 또 '롤모델'이었던 박세리를 뛰어넘어 동양 선수로는 처음으로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박인비가 이처럼 메이저대회에 유독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 여자 골프가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닌 것은 이미 다 알려졌다. 어려서부터 일찍 골프에 입문, 피나는 노력을 한다. 엄청난 훈련양은 기본이다. 박인비도 이 과정을 거쳤다. 무엇보다 부모의 적극적인 지원이 뒷받침됐다. 아버지 박건규씨는 사업으로 성공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박인비는 초등학교때부터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떠났다. 한국에서 훈련하는 다른 주니어 선수들보다 훨씬 많은 라운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미국 골프장이 놀이터였다. LPGA 투어에 곧바로 적응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프로로 전향한 뒤 박인비는 한동안 메인 스폰서 없이 투어를 뛰기도 했다. 스폰서 없이 투어 생활은 쉽지 않다. 그러나 박인비는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먼저 맞은 매
박인비는 18살이던 지난 2006년 프로로 데뷔했다. 올해로 벌써 10년차다. 지난 2008년 LPGA 투어 첫 승을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서 거뒀다. 이후 슬럼프도 겪었다. 몇년동안 우승이 없다가 2012년 2승을 거두면서 부활에 성공했다. 이후 매년 승수를 쌓으며 이 자리까지 왔다. 냉탕과 온탕을 모두 경험하면서 정신력은 물론 샷도 단단해 졌다. LPGA 투어 시드를 유지하면서 많은 대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코스에 대한 정보를 누구보다 잘 안다.
긍정의 힘
LPGA 투어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은 박인비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달인'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번 대회 우승 이후에도 박인비는 "골프도 인생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골프장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박인비는 라운드 도중 표정 변화가 없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침묵의 암살자'다. 그 배경엔 긍정이 존재한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박인비의 힘은 큰 대회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박인비는 지난 2008년 우승 이후 2011년까지 우승이 없었다. 골프를 포기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언제가는 잘 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극복했다. 박인비는 "골프라는 종목이 참 묘하다. 안 될 것 같다가도 버디가 찾아온다. 언젠가는 해가 뜰거라는 것을 알게 됐다"며 긍정의 힘을 설명했다.
가족의 힘
박인비는 또다른 힘의 원천으로 가족을 꼽았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은 늘 든든한 후원자였다. 여기에 스윙코치로 만나 결혼한 남편 남기협씨는 '외조의 왕'으로 불릴만큼 박인비에겐 큰 힘이 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박인비는 이후 남씨와 함께 투어를 돌며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프로골퍼 출신인 남씨는 누구보다 박인비의 스윙을 잘 안다. 샷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면 가장 먼저 자문을 구한다. 또 빠른 시간내에 교정한다. 다른 선수들처럼 코치를 불러와서 샷을 점검받는 것보다 훨씬 빨리 샷감을 찾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박인비는 "골프 선수로서 얻은 명예와 영광은 모두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가족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신창범 기자 tigger@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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