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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성원 박찬준 기자]한국 축구의 선택은 '레전드' 홍명보(55)였다. 대한축구협회는 7일 '국가대표팀 차기 감독에 홍명보 감독을 내정했다. 8일 오전 10시 축구회관에서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 관련내용 브리핑 예정'이라고 공식 발표했다. 홍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 이후 10년 만에 A대표팀으로 돌아왔다. 지난 2월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전격 경질한 후 약 5개월 동안 이어진 KFA의 새 감독 찾기도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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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5월 선임은 실패했고, 6월 싱가포르, 중국과의 2연전은 김도훈 임시 체제로 소화했다. 시간을 벌게된 전력강화위는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리스트업을 했다. 3일 8차 회의를 통해 12명의 후보군을 추렸다.
18일 열린 9차 회의에서 12명의 후보군에 대한 평가가 진행됐다. 4~5명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카사스 감독, 거스 포엣 전 그리스 감독 등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그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던 후보는 홍명보 감독이었다. 당초 몇몇 언론으로부터 '급부상'이 거론됐던 김도훈 감독에 대한 평가는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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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수가 생겼다. 정 위원장의 선택은 KFA 고위층과 생각이 달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지난 4월 방한해 추천했다는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 감독의 이름이 언론을 통해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달 28일 정 위원장이 전격, 사퇴했다.<스포츠조선 6월28일 단독 보도> KFA는 이임생 기술총괄이사에게 키를 맡겼다. 이 이사는 30일 화상 회의를 주재했다. 노장파 위원들은 불참했고, 이는 줄사퇴로 이어졌다.<스포츠조선 7월1일 단독 보도> '정해성 전강위 체제'가 붕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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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마지막 퍼즐은 홍 감독이었다. 면담 결과, 포옛, 바그너 감독은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정몽규 회장으로부터 전권을 부여 받은 이 이사의 결론은 홍 감독이었다. 이 이사는 "만나지 않겠다"던 홍 감독의 마음을 돌려, 귀국 당일 비밀리에 만남을 가졌다. 이 이사는 적극적으로 홍 감독을 설득했다. 제안을 받은 홍 감독은 밤을 지새며 고민했다. 울산 고위층과도 긴밀하게 상의했다. 울산의 구단주를 겸하고 있는 권오갑 한국프로축구연맹 총재도 'OK 사인'을 내렸다.
홍 감독의 수락 의사가 전해지자, 움직임은 더욱 바빠졌다. 7일 오전 홍 감독과 KFA는 마지막 교감을 나눴고, 마침내 새로운 감독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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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로도 승승장구했다. 2004년 현역 은퇴 후 행정가 수업을 받던 홍 감독은 당시 A대표팀을 이끌던 딕 아드보카트 감독의 코치 제안을 받았고, 수차례 고사 끝에 수락했다. 지도자의 길에 들어선 홍 감독은 2009년 U-20(20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으로 첫 발을 뗐다. 그 해 이집트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18년 만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한국 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선물했다.
꽃길만 걸었던 홍 감독은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실패하며 고개를 숙였다. 첫 번째 실패였지만 가혹했다. 한동안 야인 생활을 한 그는 중국 프로축구 항저우 감독을 거쳐, 행정가로 한국 축구에 돌아왔다. 2017년 11월 KFA 전무이사로 선임된 그는 성공적인 변화를 이끌었고, 2020년 12월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울산의 지휘봉을 잡은 그는 또 신화를 썼다. 2022년 17년 만에 울산의 K리그1 우승을 이끈 홍 감독은 지난해에는 창단 후 첫 2연패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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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었다. "이 길이 내가 걸어야 할 길이라면 피하고 싶지는 않다. 선수 시절 쌓아놓은 명예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받아들이겠다." 19년 전인 2005년 그의 출사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홍명보의 또 한번의 도전이 시작됐다.김성원, 박찬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