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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스만 선임 후폭풍, '누구' 보다 중요한 '철학'을 놓친 결과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3-03-01 17:54 | 최종수정 2023-03-02 00:05


클린스만 선임 후폭풍, '누구' 보다 중요한 '철학'을 놓친 결과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누구'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 4년 간 한국축구가 갖고 가야 할 '철학'이 사라졌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선임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대한축구협회는 2월27일 파울루 벤투 전 감독의 후임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여론은 싸늘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현역 시절 '레전드'로 평가받았지만, 지도자로 변신 후에는 이렇다할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독일 출신)은 새로운 감독 선임 기준에 대해 전문성, 경험, 동기부여, 팀 워크 배양, 환경적 요인 등 5가지를 거론했는데, '과연 여기에 부합하는 인물이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여기에 선임 과정에서 보여준 시스템 부재와 불통의 문제까지, 부정적 시선이 이어졌다.

마이클 뮐러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이 이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28일 기자회견에 나선 뮐러 위원장은 동문서답에 가까운 어처구니 없는 답변으로 실소를 자아냈다. '누구와, 어떻게, 왜 뽑았는지' 무엇 하나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 내용도 모르는 모습이었다. 직접 선임과 협상 과정을 진두지휘한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4년 전 벤투 감독 선임 발표 후 있었던 김판곤 당시 위원장의 명쾌한 기자회견과는 180도 달랐다. 아직 출발도 안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물음표만 더욱 커졌다.

이같은 논란의 시작은 '철학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한국축구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새로운 감독을 찾아나섰다. 감독 찾기의 첫 발은 '철학의 정립'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겠다"며 "그 철학은 능동적인 경기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하고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능동적인 공격 전개를 통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적극적인 축구가 '능동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월드컵 예선 통과, 대륙컵 대회 우승 경험, 세계적인 리그에서의 우승 경험' 등 구체적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름값은 상관없었다. 최우선은 '우리의 철학과 부합하느냐'였다. 김 위원장은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후보자들의 축구관을 검증했고, 위원들에게 수시로 브리핑하며 상황을 공유하고, 중지를 모았다. 그렇게 해서 선임한 이가 바로 벤투 감독이다. 물론 벤투 감독도 선임 당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류를 바꿨다. 김 위원장이 명품 기자회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입담이 좋아서도, 벤투 감독을 믿어서도 아니다. 한국축구가 설정한 철학에 부합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선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로드맵을 설명했을 뿐이다.

이후 스토리는 우리가 아는데로다.

4년 후 한국축구는 몇 보나 뒷걸음질 쳤다. 카타르월드컵에서 가능성을 얻었지만, 새로운 4년은 기대 보다 우려가 크다. 진짜 문제는 새로운 4년 동안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어떤 논의도 없었고, 그 논의를 할 생각도 없었다. 굳이 벤투 감독의 철학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 지난 4년 간 한 벤투식 축구를 분석한 후, 어떤 것이 한국축구에게 더 좋은 길인지 판단하고, 이를 새로운 철학으로 정립하면 된다. 안티 축구를 하겠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다.

어떤 축구를 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감독을 뽑을리 만무하다. 우리 철학이 없으니 '어떤'이 아니라 '누가'가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기준'이 아무리 거창한 들, 달라질게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왜 뽑혔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뮐러 위원장의, 통역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선임이 목적이었으니, 철학도 필요 없었고, 논의도, 절차도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설명할 것도 없었다. 뮐러 위원장의 황당했던 기자회견은 그 현주소였다. 이제 한국축구는 클린스만 감독이 제대로 된 길을 가주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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