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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누구' 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쳤다. 4년 간 한국축구가 갖고 가야 할 '철학'이 사라졌다.
이같은 논란의 시작은 '철학의 부재'에서 출발한다. 4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 아쉬운 성적표를 받은 한국축구는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며, 새로운 감독을 찾아나섰다. 감독 찾기의 첫 발은 '철학의 정립'이었다. 김판곤 위원장은 "우리가 추구하는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감독을 뽑겠다"며 "그 철학은 능동적인 경기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하고 승리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능동적인 공격 전개를 통해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적극적인 축구가 '능동적인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월드컵 예선 통과, 대륙컵 대회 우승 경험, 세계적인 리그에서의 우승 경험' 등 구체적 조건까지 내걸었다.
이름값은 상관없었다. 최우선은 '우리의 철학과 부합하느냐'였다. 김 위원장은 심도 있는 인터뷰를 통해 후보자들의 축구관을 검증했고, 위원들에게 수시로 브리핑하며 상황을 공유하고, 중지를 모았다. 그렇게 해서 선임한 이가 바로 벤투 감독이다. 물론 벤투 감독도 선임 당시 반응은 썩 좋지 않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기류를 바꿨다. 김 위원장이 명품 기자회견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입담이 좋아서도, 벤투 감독을 믿어서도 아니다. 한국축구가 설정한 철학에 부합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을 선임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 로드맵을 설명했을 뿐이다.
4년 후 한국축구는 몇 보나 뒷걸음질 쳤다. 카타르월드컵에서 가능성을 얻었지만, 새로운 4년은 기대 보다 우려가 크다. 진짜 문제는 새로운 4년 동안 우리가 어떤 축구를 할지에 대해 설명을 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이를 위한 어떤 논의도 없었고, 그 논의를 할 생각도 없었다. 굳이 벤투 감독의 철학을 계승할 필요가 없다. 지난 4년 간 한 벤투식 축구를 분석한 후, 어떤 것이 한국축구에게 더 좋은 길인지 판단하고, 이를 새로운 철학으로 정립하면 된다. 안티 축구를 하겠다고 해도 상관이 없다. 하지만 이 과정이 생략됐다.
어떤 축구를 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감독을 뽑을리 만무하다. 우리 철학이 없으니 '어떤'이 아니라 '누가'가 포인트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기준'이 아무리 거창한 들, 달라질게 없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왜 뽑혔는지 설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너무나 자명하다. 뮐러 위원장의, 통역의 잘못도 아니다. 그저 선임이 목적이었으니, 철학도 필요 없었고, 논의도, 절차도 중요치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설명할 것도 없었다. 뮐러 위원장의 황당했던 기자회견은 그 현주소였다. 이제 한국축구는 클린스만 감독이 제대로 된 길을 가주길 바라는 수 밖에 없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