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와이드인터뷰]다잡은 승격 놓친 설기현 경남 감독 "이런게 축구, 벌써 잊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20-12-03 06:00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벌써 잊었어요. '이런게 축구구나'하고 다시 느꼈습니다."

설기현 경남FC 감독의 목소리는 덤덤했다. 다잡은 승격 티켓을 눈 앞에서 놓친 만큼, 그 아쉬움의 여운이 여전히 남았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설 감독은 벌써 털어낸 듯 했다. 설 감독은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결과는 벌써 나왔고, 아쉽게 승격하지 못했다. 내가 끙끙댄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첫 날은 멍했지만, 제법 잘 털어냈다. 이제는 잊었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도 아쉬운 승부였다. 지난달 29일 펼쳐진 수원FC와의 플레이오프. 모두가 수원FC의 승격을 예상했던 경기였다. 하지만 휘슬이 불리자, 그라운드에서는 예상과 다른 경기가 펼쳐졌다. 경남은 그야말로 완벽한 축구를 펼쳤다. 수원FC는 경남의 경기력에 막혀 94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1-0 리드, 종료까지 1분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그 1분 사이, VAR 결과 페널티킥이 선언됐고, 안병준이 성공시키며 승격의 주인공이 경남에서 수원FC로 바뀌었다. 설 감독은 "참 아이러니하다. 이날 경기는 우리가 한 최고의 경기였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내가 만든 전술이지만, 이게 되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선수들도 신바람 내면서 했고, 질 수가 없는 경기였다. 하지만 결과를 잡지 못했다"며 "못할 때는 어영부영 이기기도 하는데, 오히려 잘하고도 못이기고…. 이런 게 축구인 것 같다"고 했다.

확실히 경기를 매조지할 기회가 있었다. 설 감독의 교체카드에 아쉬움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많았다. 설 감독은 베테랑 대신 신예들을 넣었고, 이 선수들은 경험 부족을 드러냈다. 결국 페널티킥도 여기서 내줬다. 설 감독은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김)형원이가 떠오르더라. 형원이가 헤딩이 좋다. 상대가 계속 롱킥을 하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막아야 했다. 후회는 없다. 다시 해도 형원이를 넣었을 것 같다"며 "물론 결과적으로는 내 미스다. 이런 부분까지 다 세밀하게 준비했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설 감독은 올 시즌 경남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술과 유럽식 자율축구를 전면에 내세운 설 감독의 도전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초반 12경기에서 단 2승에 그쳤다. 설 감독은 "내 미스가 많았다.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확실히 대학 때와 다르더라. 대학 때는 우리가 준비한 부분이 잘되면 결과로도 이어졌는데, 잘하고도 상대 외국인 선수 한방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상대적으로 변화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짧았다. 막상 연습 때는 잘되던 게 정작 실전에서는 안되는 경우도 많고,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흔들리는 순간이 많았고, 그런 상황에서 어려움이 많았다"고 했다.

하지만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공격적인 축구라는 철학을 유지하면서, 조금씩 수정을 가했다. 후반기 들어 경기력이 눈에 띄게 안정됐다. 성적도 올라가기 시작했다. 시즌 막판이 되면서 설기현식 축구가 무엇인지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설 감독은 "대전과의 준플레이오프 전반전을 보는데 선수들이 경기를 너무 잘하더라. 전반 끝나고 아쉬운 부분을 말해야 하는데, '너무 잘한다'고 칭찬하는데만 시간을 보냈을 정도다. 시즌 내내 시행착오와 실험을 반복했는데, 그 결실이 나오는 것 같았다"고 했다. 수원FC와의 플레이오프가 정점이었다. 설 감독은 "내가 봐도 너무 잘했다. 선수들에게 늘 이야기 하는 게 '너희들이 즐겨야 관중들도 즐길 수 있다. 너희들이 그렇지 않은데, 어떻게 관중들이 재미있게 경기를 볼 수 있겠나' 인데, 이날은 즐기면서 하더라. 보면서도 '내 머릿속에 있는 게 실제로 구현이 될 수 있구나' 싶었다"고 했다.

설 감독이 아쉬움을 빨리 털어낼 수 있었던 이유, 수원FC전에서 보여준 희망 때문이었다. 설 감독은 "전술, 전술 하면서도 내심 불안감도 있었다. 아무리 좋은 전술을 만들어도, 그라운드에서 보여주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시즌 내내 나만의, 좋은 축구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잘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봤다. 내년에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고 했다. 설 감독은 인터뷰 내내 "올 시즌 많이 배웠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물론 결과를 내야 하는 자리지만, 이를 위해서는 배울건 배워야 한다. 대학에서 감독을 하기는 했지만, 프로에서 한 시즌을 온전히 보낸 적이 없다. 시즌을 운영하는 방법, 선수들과의 관계, 다루는 방법 등을 직접 부딪히면서 배웠다. 내년 시즌 더 잘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고 했다.

설 감독은 내년 시즌을 위해 일찌감치 선수단 정비에 들어갔다. 설 감독은 "지난 시즌 백성동 장혁진 황일수 등 내가 요청한 선수들이 영입되기는 했지만, 기존 선수들은 솔직히 파악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며 "올 겨울은 처음부터 내가 원하는 판을 짤 생각이다. 이제 기존 선수들은 내 전술이 무엇인지 숙지하고 있는 만큼, 취약 포지션에 대한 보강을 하고 있다. 특히 우리가 올 시즌 외국인 선수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우리가 국내 선수가 좋다고 해도, 결국 마무리는 외국인 선수 쪽에서 나와야 한다. 내년 시즌에는 내 스타일로 구성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다음 시즌은 더 힘든 승격전쟁이 예상된다. 강등된 김천 상무, 부산 아이파크, 2부에서 절치부심할 대전 하나시티즌, 서울 이랜드, 전남 드래곤즈 등 올 시즌 이상의 치열한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하지만 설 감독은 자신 있는 모습이었다. 그는 "올 시즌도 역대급이라 했는데 마지막까지 갔다. 만족하지 못한 수준으로, 여기까지 갔다는 건 나한테도 큰 경험이다. 성장하려면 쉬운 곳보다는 치열한 곳이 좋다"며 "마지막의 아쉬움이 다음 시즌 웃음으로 돌아올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틱톡-청룡영화상 투표 바로가기

2021 신축년(辛丑年) 신년 운세 보러가기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