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FA컵 맹활약' 유병수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9-07-04 02:49 | 최종수정 2019-07-04 11:00



[창원=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유병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이고 싶었어요."

'월미도 호날두' 유병수(화성FC)는 활짝 웃었다. 유병수는 3일 열린 경남(K리그1·1부리그)과의 FA컵 8강전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팀의 2대1 승리를 이끌었다. 창단 첫 8강에 오른 화성은 K3리그 역사상 최초의 4강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유병수는 "역사의 현장에서 주인공이 돼 기쁘다. 기적 같고,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유병수는 변함없는 클래스를 과시했다. 전반 19분 특유의 페인트 동작으로 두 명을 제친 후 침착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유병수는 "준비를 많이 했다. 혼자서 영상을 보면서 수비의 특성을 준비했다. 경남 수비가 슈팅할때 태클을 자주 한다는 것을 이용해, 한박자 빠르게 때린 것이 통했다"고 했다.

유병수는 한국축구가 주목하는 유망주였다. 2009년 인천에 입단한 유병수는 2년차인 22세에 22골을 터뜨리며 K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K리그 국내 선수 최연소 득점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날카로운 드리블과 왼발, 오른발, 헤딩 등을 가리지 않는 슈팅 능력까지 '호날두'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활약을 펼쳤다. A대표팀에도 이름을 올리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 했다.

2011년부터 그의 축구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승부조작의 소용돌이 속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인천을 떠나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힐랄로 이적한 유병수는 첫 시즌 컵대회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제 몫을 했고, 2년 뒤 러시아 로스토프로 둥지를 옮겼다. 하지만 러시아에서 문제가 생겼다. 감독 교체의 홍역을 겪은데 이어, 피지컬 위주의 축구에 고전했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내 무대 복귀를 추진했지만, 로스토프와의 계약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상근 예비역으로 K3리그의 김포시민축구단에 둥지를 틀었다. 지난해 6월 소집해제 후 일본, 호주로의 이적을 추진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심기일전해 운동을 하던 중 다시 K3리그와 연이 닿았다. 과거 인천에서 플레잉코치로 함께했던 김학철 감독의 제안을 받은 유병수는 화성에서 축구인생을 이어갔다.


1부리그에서 4부리그로 내려섰지만 유병수의 클래스는 떨어지지 않았다. 특유의 득점포를 이어갔다. 특히 상위 무대의 팀들과 만나는 FA컵에서 그의 득점력은 더욱 빛을 발했다. 5경기 연속골, 5경기에서 무려 7골을 폭발시켰다. 유병수는 "예전에는 프로에 있었지만, 지금 내 소속은 K3리그다. 옛날은 잊고 도전자라는 마음으로 한다. 상위 리그 팀들을 상대로 의욕도 생기고, '잘해야겠다'가 아니라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알리고 싶은 마음도 컸다. 유병수는 "그래서 더 준비를 열심히 했다. 솔직히 최근 경기를 많이 했다. FA컵 16강도 도민체전과 병행하느라 힘들었다. 3개월 동안 20경기 넘게 소화했다. 화성의 규모가 크지 않아 힘든 부분이 있었다. FA컵에서 계속 위로 올라가다보니 버티는 힘이 된 것 같다. 나이는 그때보다 들었지만 움직임이나 골 넣는 모습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웃었다.


사실 유병수는 더 좋은 팀, 좋은 리그로의 진출을 모색했지만, 화성의 승승장구로 일단 목표를 잠시 접었다. 유병수는 "사실 올 여름에 좋은 기회가 되면 더 좋은 팀에 가고 싶었지만 4강에 올라가서 팀에 남아야 할 것 같다. 일단 4강 준비를 잘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여러차례 '도전자'라는 말을 반복했다. 한때 '최고'였던 유병수는 다시 '최고'로 올라서기 위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더 간절히 준비하고, 뛰고 있다"고 했다. FA컵은 그 시작이다. 유병수는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싶다. 지금도 역사를 썼지만, 더 좋은 역사를 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웃었다.


창원=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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