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선 보인 벤투호, 성과와 과제는? 탈압박 없이 지배도 없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9-12 11:28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 평가전을 치렀다.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독려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9.11/

시작은 산뜻했다.

한국은 7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의 친선경기에서 2대0 완승을 거뒀다. 전반 34분 이재성(홀슈타인 킬)이 결승골을 넣었고, 후반 32분 남태희(알두하일)이 쐐기골을 넣었다. 만원 관중이 파울루 벤투 감독의 데뷔전에 열광했다. 벤투호는 정확한 빌드업과 빠른 공수 전환으로 호평을 받았다.

두번째 경기는 고전했다.

한국은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가진 칠레와의 평가전에서 0대0으로 비겼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 칠레는 강했다. 한국은 칠레의 압박에 막혀 코스타리카전과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모습이었다. 칠레를 상대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친 것도 고무적이었다.

이 정도면 성공적인 스타트였다. 두 경기를 통해 새로운 한국축구에 대한 기대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시에 과제도 받아들었다. 벤투 감독은 "일주일 동안 새로운 과정을 시작하면서 두 경기를 치렀다. 우리가 가진 철학과 원하는 플레이 스타일을 실험했다. 충분히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다. 만족하지 않는다. 한 달 뒤 여기서 발전시킬 수 있는 요소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코스타리카전, 칠레전에서 보인 벤투 축구의 성과와 과제를 분석해봤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 평가전을 치렀다. 장현수가 코너킥에서 헤딩슛을 시도하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9.11/
벤투 감독이 단 일주일만에 바꾼 것

가장 눈에 띈 것은 수비 조직력이었다. 코스타리카와의 첫 경기에서 측면을 강조한 공격축구로 강한 임팩트를 남겼지만, 벤투식 축구의 핵심은 수비다. 모험적인 축구보다는 안정적인 축구를 선호하는 벤투 감독은 탄탄한 수비 후 빠르게 전환되는 움직임을 강조한다. 실제 소집 후 가장 공을 들인 것도 수비 전형이었다. 코스타리카전에서 맹활약을 펼친 남태희는 "수비 형태와 조직적인 부분을 많이 강조하신다. 훈련도 이 부분에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칠레전에서 훈련의 성과가 바로 나타났다. 정상급 공격력을 가진 칠레를 상대로 안정감 있는 수비력을 보였다. 물론 골키퍼 김진현(세레소 오사카)의 킥 실수와 중앙 수비수 장현수(FC도쿄)의 백패스 미스로 기회를 내주기도 했지만, 수비진 자체가 흔들린 적은 없었다. 좌우 윙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조직력을 유지한 것은 높은 점수를 주기에 충분했다. 벤투 감독도 "실수를 제외하고는 결정적 기회를 주지 않았다. 수비 자체는 만족한다"고 했다.


부분 전술의 등장도 반갑다. 축구의 전술은 크게 팀 전술, 부분 전술, 개인 전술로 나눠진다. 3~4일 훈련 후 경기를 치러야 하는 대표팀은 팀 전술과 개인 전술이 강조된다. 전체적인 형태만 만든 뒤 개인역량으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지난 몇 년 간은 이같은 흐름이 더 두드러졌다. 대표팀이 고전한, 특히 밀집수비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뜩이나 개인기가 부족한데, 개인 전술을 보완해 줄 부분 전술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슈틸리케 시절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벤투호는 달랐다. 좌우 윙백을 전진 배치한 후 좌우 미드필더는 가운데로 좁혀서 뛰었다. 더블볼란치(2명의 수비형 미드필더)가 빠른 전환 패스를 통해 측면에 공간을 만들면 윙백-윙어-공격형 미드필더(혹은 원톱)가 삼각형 형태로 대형을 유지하며 원터치 패스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칠레전에서는 상대의 압박에 밀려 이렇다할 찬스를 만들지 못했지만,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짧은 훈련 기간 속 목적이 있는 패턴 플레이가 펼쳐진 것은 분명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11일 오후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칠레와 평가전을 치렀다. 김진현이 칠레의 강슛을 막아내고 있다. 수원=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8.09.11/
탈압박 없이 지배도 없다

이번 9월 A매치에서 가장 달라진 부분은 후방 빌드업이었다. 벤투 감독은 "공을 점유하고 경기를 지배하며 기회를 최대한 많이 창출하는 걸 목표하고 있다"고 했다. 지배하는 축구의 시작은 후방 빌드업이었다. 골키퍼를 비롯해 최후방 부터 짧은 패스로 공격을 전개했다. 울리 슈틸리케 시절에도, 신태용 시절에도 점유율을 중심에 두고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갔지만, 벤투 체제 하에서는 그 색채가 더욱 짙어졌다. 특히 뒤에서부터 경기를 풀어나가는 것을 강조했다. 무의미한 롱패스 대신 뒤에서부터 안정적으로 경기를 전개했다.

성공적이었던 코스타리카전과 달리 하지만 강력한 압박을 내세운 칠레를 상대로는 어려움을 겪었다. 볼을 가진 수비수들은 뒤로 돌리기에 급급했고, 김진현은 여러차례 킥 미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어느 한 스타일이 나오려면 우리 선수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상황에 따라 어려움이 생기면 다른 방식을 취할 수도 있겠지만, 스타일을 유지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100% 이대로 갈 것"이라고 했다. 후방 빌드업을 유지하겠다는 뜻이었다.

후방 빌드업이 장착되기 위한 전제 조건은 탈압박이다. 압박은 현대축구의 기본이다. 압박의 위치는 갈수록 올라가고 있다. 수비수들이 이 압박을 어떻게 벗겨낼 수 있는지가 빠른 공격전개의 포인트다. 탈압박의 핵심은 개인기지만, 전술적으로도 얼마든지 풀어갈 수 있다. 두번의 경기를 통해 확인된 벤투 사단의 '전문성'이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탈압박은 아시안컵 우승의 길목에 있는 이란과 일본을 넘기 위한 필수 과제이며, 지배축구 완성을 위한 필요 조건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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