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더비까지 잡은 최순호, 그도, 포항도 분명 업그레이드 됐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4-02 05:20



최순호 포항 감독은 언제나 덤덤하다.

결과에 관해서는 그렇다. 대승에도 들뜨지 않고, 아쉬운 패배에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최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그는 각론 보다는 총론을 강조한다. 세밀한 부분 보다는 기본적인 틀을 만드는데 공을 들인다. 경기에 대한 평가도 결과 보다는 과정을 본다. 형태만 유지된다면 그 팀이 가진 수준만큼 성적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 최 감독의 지론이다.

사실 올 시즌을 앞두고 최 감독은 이 '틀'에 대해 확신하지 못했다. 물론 송승민 김민혁, 채프먼, 레오가말류 등 예년에 비해 공격적인 영입을 통해 스쿼드는 양과 질에서 한단계 올라섰다. 하지만 공격 전개의 큰 부분을 차지했던 손준호의 전북 이적과 황지수의 은퇴 공백이 생갭다 컸다. 연습경기에서도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최 감독도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고 털어놨다. 덤덤함 속에 냉정함을 유지하는 최 감독의 평가인만큼, 포항의 초반은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되자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지고 있다. 대구와의 개막전에서 3대0으로 이길때까지만 하더라도, 반신반의 했다. 실제로 내용면에서는 대구가 더 좋았다. 결정력이 만든 승리였다. 두번째 경기부터 최 감독이 원하는 '틀'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전남을 3대2로 잡았다. 원하던 전개 방식으로 공격이 이루어졌다. 물론 100%는 아니었지만, 생갭다 더 정돈된 축구를 펼쳤다. 최 감독은 세번째 경기인 수원전을 앞두고 "좀처럼 질 것 같지 않는 느낌이 든다"는 말로 자신감을 보였고, 결과는 1대1이었다.


그리고 3월31일, 지난 시즌 단 한차례도 이기지 못한 울산과의 동해안더비에서 2대1 승리를 거뒀다. 전반은 최 감독이 말한대로 완벽한 경기였다. 앞서 언급한대로 최 감독은 틀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선수들이 자유롭게 뛰는 축구를 선호한다. 포지셔닝 개념을 강조, 또 강조한다. 개막 후 전술과 라인업에 변화를 주지 않고 이어온 '뉴 포항'은 마침내 이 개념을 완벽히 숙지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활동폭으로 최 감독을 고민 짓게 했던 김승대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면서도 장기인 라인브레이킹으로 결승골을 넣었고, 경남에서 임대 복귀한 정원진도 중앙 미드필더로 적응한 모습이다. 김광석이 부상에서 돌아오고, 하창래가 가세한 포백도 안정감이 있는 모습으로 최 감독식 공격축구를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선수들의 승부욕이다.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순한 모습을 보여줬던 포항 선수단은 승리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 감독이 꼽는 상승세의 숨은 비결이기도 하다. 특별히 선수들에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승부욕은 최 감독이 속으로 아쉬움을 갖고 있는 대목이었다. 미팅을 통해 포항에 대한 자긍심과 승부욕을 조금씩 강조한 최 감독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선수들의 의지가 커지고 있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만큼 큰 동기부여는 없다.

최 감독은 울산전이 끝난 후 "울산미포시절의 느낌을 받고 있다"고 했다. 매 시즌 우승을 당연하게 했던 미포 시절은 최 감독 지도자 생활의 하이라이트 순간이다. 다음 경기, 포항의 상대는 전북이다. 최 감독이 가장 이기고 싶어하는 팀이기도 하다. 최 감독이 이 특별한 기분만큼, 특별한 질주를 이어갈 수 있을지. 분명한 것은 최 감독도, 포항도 업그레이드 됐다는 점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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