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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인터뷰]"'박항서 매직'? 아들뻘 베트남선수들과 함께 뒹굴었다"

전영지 기자

기사입력 2018-01-25 21:08


ⓒAFPBBNews = News1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이 23일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에서 강호 카타르를 꺾고 사상 첫 결승에 오르던 날, 베트남 전역은 난리가 났다. 붉은 깃발을 든 축구 팬들이 일제히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직후 한국 풍경을 빼닮았다. 현지 언론은 '박항서 매직'을 연일 대서특필중이다. '베트남의 히딩크'라는 애칭까지 생겼다.

25일, 우즈베키스탄과의 결승전(27일 오후 5시)을 준비중인 박 감독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박항서 매직'을 언급하자 "아이구, 아이구, 아닙니다" 손사래 쳤다. "인기라는 게 3시간만 지나면 다 잊혀지는 것 아니냐, 일희일비 할 게 뭐 있나. 2002년 한일월드컵 때, 16년 전에 다 겪어봤다." 산전수전 다 겪은 백전노장은 담담했다."베트남 축구 사상 첫 역사"라는 호들갑에 별일 아니라는 듯 허허 웃었다.

베트남 선수들 체력이 약하다고?

박 감독은 지난 10월 25일 베트남 23세 이하 대표팀 및 A대표팀 사령탑으로 전격 부임했다. 베트남에 대해 처음 들은 정보는 '체력이 약하다'는 것이었다. 박 감독은 연연하지 않았다. "체력이 약하다는 구체적 데이터도 없었다. 어차피 체력은 대표팀의 짧은 훈련으로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박 감독은 '동지' 이영진 수석코치, 배명호 피지컬 코치와 베트남 선수들의 장점을 극대화할 전술을 고민했다.

박 감독의 첫 실험은 '스리백'이었다. "우리는 B조 4번 시드였다. 23세 이하 챔피언십에 나설 16개 팀은 무조건 우리보다 강하다고 봤다. 리그를 보니 우리 선수들은 민첩하고 순발력, 기동력이 좋더라. 우리보다 강한 상대와 경기하려면 중앙을 두텁게 해야 하는데 중앙수비수는 불안했고, 기동력 있는 측면 자원은 많았다."

12월 1일 첫 소집 후 열린 M-150컵 대회에서 박 감독은 스리백을 처음 선보였다. 태국에 2대1로 이기고 우즈벡에 1대2로 졌다. 우즈벡-태국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첫 스리백 시도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박 감독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촉박했던 만큼, 정당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대표팀이 대회를 준비하려면 적어도 2가지 옵션은 있어야 한다. 기존 포백 전술만으로는 불안하다"고 주장했다. "포백은 이미 익숙하니, 스리백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나."

새해 AFC U-23 챔피언십, 박 감독의 베트남은 달라졌다. 첫경기, 한국에 1대2로 패했지만 이후 무패를 달렸다. '선수비 후역습'으로 호주를 꺾고(1대0승), 시리아(0대0무)와 비겼다. 8강에선 '우승후보' 이라크와 3대3 무승부 후 승부차기에서 승리하며 사상 첫 4강에 올랐다. 카타르와의 4강전, 박 감독은 '팔색조' 전술을 펼쳐보였다. 초반 약팀이 강팀을 상대로 할 때의 수비를 두텁게 쌓는 3-5-2 전술로 탐색전에 나섰다. 측면 돌파를 강화하기 위해 3-4-3으로 포메이션을 변경한 후 수세에선 극강의 공격전략과 함께 포백을 구사했다. 반신반의하던 현지 여론은 단번에 돌아섰다. 박항서호의 사상 첫 결승행에 뜨겁게 환호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의 헌신에 공을 돌렸다. "우리 선수들이 잘 따라줬다. 전술에 영리하게 잘 적응해줬다."

줄곧 회자돼온 체력 논란도 잦아들었다. 박 감독은 "훈련해보니 체력이 결코 나쁘지 않았다. 상체 근력이 다소 부족한 것 외에 지구력, 민첩성은 무척 뛰어났다"고 평가했다. "2경기 연속 연장전, 승부차기까지 했으면 이미 체력은 증명되지 않았나"라며 웃었다.


박 감독은 매경기 선수들에게 "충분히 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감독의 말대로였다. 시리아, 이라크, 호주 등 체격 좋은 선수들과의 맞대결을 이겨내며 선수들의 자신감도 따라 올라왔다. 박 감독은 2경기 연속 연장, 승부차기 혈투를 승리로 바꿔낸 베트남 선수들의 '원팀' 정신에 찬사를 보냈다. "우리 선수들의 정신력을 높이 평가한다. 목표 의식이 뚜렷하다. 한다면 해낸다. 동료애가 대단히 끈끈하다."

3개월만의 결승행, 기적의 비결?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하며 한일월드컵 4강을 이끈 박 감독은 결승행 쾌거 직후 '베트남 히딩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님과 제가 감히 비교가 됩니까? 아이구, 아이구"를 반복했다.

3개월만의 깜짝 결승행에는 필시 '비결'이 있을 터. '그런 것 없다'고 손사래 치던 박 감독이 툭 한마디 던졌다. "특별한 건 없고 그냥 우리 선수들하고 뒹굴며 재밌게 지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들뻘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치료실에서 스스럼없이 함께 뒹군다. 선한 눈빛의 선수들은 마음 따뜻한 외국인 감독에게 기꺼이 마음을 열었다. "할 수 있다"는 감독 말을 믿고 뛰다보니 승리가 찾아왔다. 박 감독은 "우리 아들보다 어린 선수들이다. 요즘 선수들이 '박후이' '박쯔엉' 식으로 내 성을 이름 앞에 붙이면서 장난을 친다. 분위기가 아주 좋다"며 웃었다. 물론 '원팀'의 규율도 확실하다. "팀 미팅에 늦지 않기, 식사시간 휴대폰 금지 등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나도 얼마전에 복장 규정을 어겨 벌금을 낸 적이 있다"며 웃었다.

2002년 월드컵 4강, 전남드래곤즈 감독, 상주 상무 감독을 두루 역임한 백전노장은 쉰아홉 나이에 '베트남 감독'으로 살아가는 일이 행복하다. "한국에서의 삶도 물론 행복했다. 베트남에서 외롭지 않냐고 하는데 매일 훈련하다 보면 외로울 틈도 없다. 이 선수들의 반짝반짝한 눈동자를 보면 기분이 너무 좋다. 행복하다. 기운이 난다"고 했다. "생활도 단순해졌다. 요즘 이 코치, 배 코치와 셋이서 라면 끓여먹는 게 낙이다. 듣고 보는 일이 적으니 축구에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며 웃었다.

우즈벡과의 결승전? 또 한번의 기적을 준비하겠다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의 비약적 성장에 대한 찬사에 오히려 냉정한 현실을 짚었다. "기술적인 면이 아직 부족하다. 더 노력해야 한다. 솔직히 정상에 왔다 생각하면 안된다. 더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일부에서 언급한 유스시스템의 발전에 대해 박 감독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했다. "정해성 감독의 호앙아인잘라이, 하노이 등 4~5개팀은 훌륭하다. 대표팀 중 르언 쑤언 쯔엉, 응우옌 꽁 푸엉 등 13명, 전력의 60~70%가 이 두 팀 소속이다. 그러나 한국같은 학원축구 시스템은 없다. 프로팀 간 차이도 크다. 좀더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베트남 축구의 미래에 대한 코멘트도 미리 앞서가지 않았다.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한다. 매경기 선수들에게 이야기한다. 자신감은 좋지만 자만할 수준까지는 아직 올라오지도 않았다. 우리는 정상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하는 팀이다."

27일 우즈벡과의 결승전을 앞두고 겸허한 각오를 밝혔다. "우즈벡은 정말 잘하는 팀이다. M-150 우승 멤버보다 좀더 보강된 전력으로 이번 대회에 나왔다"고 했다. "사실 이번 대회 우리보다 약한 팀은 없었다. 한경기 한경기 기적처럼 여기까지 왔다. 첫경기 한국전을 패했을 뿐 , 매경기 기적을 쌓았다. 이제 1경기가 남았다. 또 한번의 기적을 쌓아올리기 위해 준비를 잘하겠다."

박 감독은 마지막까지 겸손했다. 베트남 축구를 변화시키는 소명에 대해 "저 하나가 1억 인구, 남북으로 2000km에 달하는 베트남을 어떻게 다 변화시키겠어요?"라고 반문했다. '박항서 신드롬', '박항서 매직' 등 세상의 갖은 수사에도 그는 담담했다. "대한민국에서 온 감독으로서 베트남 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사명감을 갖고 노력할 뿐이다. 내가 갖고 있는 축구철학과 지식, 노하우들이 베트남 축구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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