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기자석]어지러운 경남, 정리할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박찬준 기자

기사입력 2018-01-23 23:21


사진제공=한국프로축구연맹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이 있다. 능력이나 성과와는 상관이 없다. 찍어 누르기 위해 모든 권력이 동원된다. 치사한 방법도 서슴지 않는다. 인간적인 모욕까지 준다. 찍힌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러나는 것 뿐이다. 그 자리에는 권력에 가까운 사람이 채워진다. 전문성은 사라진 채 권력의 눈치만을 본다. 결국 그 단체는 죽어갈 수 밖에 없다.

어딘지 낯이 익다.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된 정치권의 전형적인 '적폐'다. 적폐청산이 한창인 지금, 정작 정치와 가장 거리가 있어야 할 축구판에서 이 같은 추태가 벌어지고 있다. 진앙지는 기적의 승격을 달성한 '경남'이다.

지난 시즌 경남은 스포트라이트의 중심에 섰다. 외국인선수 비리, 심판 매수 등 전임 대표들의 각종 비위와 만행으로 얼어붙은 경남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환골탈태했고, 지난 시즌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승격에 성공했다. 폐허 속에 피어난 꽃이었다. 모두가 경남의 반전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하지만 1부리그 준비에 한창일 지금, 경남은 지난 몇 주간 단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발목을 잡은 것은 공교롭게도 가장 큰 힘이 되어야 할 '내부'였다.

조짐은 승격을 확정지은 지난해 10월부터 있었다. 구단주인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의 압박이 이어졌다. 곧바로 승격의 1등 공신인 김종부 감독과 조기호 대표를 흔들었다. 이 과정 속 축구인 A씨에 대한 낙하산 인사 의혹이 불거졌다. 이 A씨는 한 대행과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행도 인터뷰를 통해 인정한 사실이다. 미적지근한 태도로 김 감독과 재계약을 마친 경남도는 이어 표적 감사를 통해 조 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 이 과정에서 모욕적인 방식도 동원됐다. 갑작스럽게 진행된 감사로 개막 준비에 나설 직원들은 일을 놓은 채 감사 자료 준비에만 몰두할 수 밖에 없었다. 경남의 시즌 준비는 올스톱 됐고, 결국 조 대표는 사표를 던졌다.

여론의 몰매가 이어졌다. 한 대행은 기자회견을 통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여론은 더 악화됐다. 다행히 조금씩 출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며칠간 논란의 중심에 선 조 대표의 사표는 반려하기로 했다. 한 대행은 22일 조 대표를 집무실로 불러 그간의 혼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조 대표도 한 대행의 뜻을 받아들여 경남의 체질 개선에 더욱 힘쓰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경남FC의 구단주인 한경호 경남도지사 권한대행.
하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살아있다. 한 대행은 여전히 사무국장 제도의 부활을 원하고 있다. 공모를 통해 사무국장을 뽑는다고 했지만, 지금까지의 행보를 본다면 또 한번 찍어누르기식 인선을 배제하기 어렵다.

해법은 역시 하나다. 지금껏 해왔던대로, 경남 사무국을 그대로 두는 것이다. 지난 2년간 경남이 부활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 이유는 '전문성' 확보였다. 무명에서 보석으로 성장한 말컹의 사례가 좋은 예다. 선수단 운영팀은 경남의 예산에 맞춰 가능성 있는 자원을 발굴했고,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말컹이었다. 사실 말컹이 신체조건 측면에서 좋기는 했지만, 기술적으로는 성장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코칭스태프는 프런트의 결정을 믿고 선수를 완성해나갔다. 김종부 감독은 적극적인 지도로 말컹의 가능성을 뽑아냈다.

그 다음은 수뇌부의 몫이었다. 말컹이 리그에서 성공 가능성을 보이자 수뇌부는 빠르게 완전영입을 결정했다. 결국 잔류를 선언했지만, 말컹은 국내외에서 러브콜을 받는 30억원 이상을 호가하는 선수로 성장했다. 말컹의 성공이 워낙 두드러졌지만, 말컹 외에도 이런 과정을 통해 성공한 케이스가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전문성을 위해 필요하다'던 사무국장 없이 이뤄낸 성과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도 고쳐쓰지 말라'고 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만큼 어떤 선택을 하든, 정치적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도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구단인만큼 당연히 필요한 부분에는 칼을 대야 한다. 하지만 이미 성공 모델을 만든 구단에 구단주의 입김을 넣는 것은 다른 부분이다. 권력을 앞세워 팀을 흔드는 구태는 더 이상 반복되면 안된다. 인재 대신 낙하산, 축구 대신 정치가 들어서면 희망은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기존 시도민구단들이 비정상의 길에 들어선 것도 바로 오랜기간 이어진 적폐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방선거 출마를 고심 중인 한 대행은 '적폐청산'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고심 중이다.


스포츠2팀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 바로가기[스포츠조선 페이스북]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