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경의 J사커]태풍도 못막은 팬심과 韓GK들, 그리고 포돌스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7-09-20 17:34


◇지난 16일 열린 고베-삿포로 간의 2017년 J1(1부리그) 경기가 열린 일본 효고현 고베 종합운동장의 모습. 고베=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지난 주말. 일본 열도는 연휴 기간 내내 떨었다.

제18호 태풍 '탈림'의 기세가 맹렬했다. 탈림은 규슈에 상륙한 뒤 혼슈를 거쳐 홋카이도까지 폭우와 강풍을 몰아쳤다. 곳곳에서 발생한 사상자, 이재민으로 연휴 기분을 낼 새가 없었다. J리그도 일부 중단됐다. J2(2부리그) 에히메-교토, 구마모토-후쿠오카, J3(3부리그) 세레소 오사카 23세 이하(U-23)-기타큐슈전이 연기됐다.

지난 16일 고베-삿포로전이 열린 효고현 고베종합경기장을 찾았다. 경기 시간이 다가올수록 비바람은 거세졌다. 경기장을 찾는 팬들에겐 불운한 날이었다. 구단도 야속할 만했다. 고베는 올 시즌 개폐식 돔구장인 노에비어스타디움과 고베종합경기장에서 번갈아 홈경기 일정을 치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야외 경기 일정이 잡힌날 태풍이 올라온 것이다. 빈 관중석을 머릿속에 그리며 경기장을 찾았다. 흔히 우리가 아는 우라와, 가시마 등 강팀과 달리 지방의 중소규모 팀들은 어떤 풍경을 그리고 있을지도 궁금했다.


◇16일 일본 효고현 고베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고베-삿포로 간의 2017년 J1(1부리그) 경기에서 팬들이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다. 고베=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경기장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부터 '기대'는 깨졌다. 한산하던 내부가 경기장과 가까워지자 고베, 삿포로 유니폼을 입은 팬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경기장에 다다르자 역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미리 준비한 우비를 익숙하게 갈아 입고 경기장으로 향한 이들은 구단 용품숍, 포장마차에 긴 행렬을 이뤘다. 고베 명물인 '와규(和牛·일본소)' 요리는 일찌감치 매진 됐다. 여느 J리그 경기장과 다를바 없는 활기였다.


◇16일 고베-삿포로 간의 2017년 J1(1부리그) 경기가 열린 일본 효고현 고베 종합운동장 외부의 모습. 고베=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홈팀인 고베의 입장수익도 상당해보였다. 3600엔(약 3만6000원)임에도 지붕 하나 없는 동측 지정석은 빈 자리가 없었고, 6300엔(약 6만3000원)이지만 '관람' 외에는 아무런 혜택이 없는 서측 지정석도 상당 부분 채웠다. 고베 서포터스가 위치한 북측 자유석은 빈 자리가 보이지 않았다. 공통점은 우산을 펴지 않고 우비 차림으로 경기를 관전하는 모습이었다.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특유의 국민성이었다.


◇지난 16일 고베-삿포로 간의 2017년 J1(1부리그) 경기가 열린 일본 효고현 고베 종합운동장 외부에 마련된 고베 구단 용품숍. 고베=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그라운드엔 반가운 두 얼굴이 있었다. 고베 수문장 김승규와 삿포로의 수호신 구성윤이 맞대결 했다. 바람으로 골킥이 제대로 뻗지 못하는 악재 속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했다. 결과는 2대0, 선배 김승규가 완승했다.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일본어로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삿포로의 반격을 저지했다. 초반 수비 실책으로 두 골을 내준 구성윤은 이후 안정적인 방어로 반격에 힘을 보탰지만 침체된 팀 전력이 야속할 만한 승부였다.


◇16일 일본 효고현 고베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고베-삿포로 간의 2017년 J1(1부리그) 경기에는 김승규, 구성윤이 나란히 선발로 출전해 90분 동안 골문을 지켰다. 고베=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22명의 선수 중 가장 관심을 끈 이는 독일 대표팀 공격수 출신인 루카스 포돌스키다. 앞선 감바 오사카전에서 득점포를 기록했던 포돌스키는 이날도 경기시작 4분 만에 중거리포를 때리며 골키퍼 손에 맞고 흘러나온 볼을 밀어넣은 다나카 준야를 도왔다. 공격포인트는 올리지 못했으나 밀집수비를 뚫는 감각적인 패스로 관중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전성기 때의 기량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차원에선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날 집계된 관중 수는 7911명. 태풍이 상륙한 규슈에서 펼쳐진 사간도스-고후(7381명)에 이어 두 번째로 적은 관중수였다. 관중석에서 일어나 경기장 바깥으로 나가는 시점까지 현장 직원들로부터 수 차례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받았다. 우비 차림으로 확성기를 든 채 경기 두 시간 전부터 입장 안내를 돕던 수 십명의 아르바이트생 역시 제 자리를 지켰다. 태풍을 뚫고 경기장을 찾을 만큼 열정적인 팬심이 단순히 '오타쿠(お宅·어떤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 문화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스포츠 2팀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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