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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에 '히딩크 광풍'이 불어닥쳤다. 히딩크 측 매니저라고 하는 노제호 히딩크재단 사무총장이 '뜬금없이', '일방적으로' 꺼낸 히딩크 카드에 한국 축구는 순식간에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았다. 논란은 약간 잦아든 상태다. 지난 15일(한국시각) 유럽 현지에서 히딩크 감독이 직접 입을 열어 자신의 역할을 'A대표팀 감독'이 아닌 '조언자'로 설정하면서 일단락되긴 했다.
여론이 악화될 가능성은 분명 존재한다. 신태용호는 월드컵 본선 대비 마지막 A매치가 될 3월까지 제대로 된 조직력을 갖추기가 어렵다. 당장 10월 유럽에서 러시아와 튀니지를 상대할 때도 최종예선 2연전에서 희생한 K리거들이 배제된 채 해외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11월 A매치 기간에도 훈련시간은 채 일주일도 되지 않는다. 내년 1월 2주간의 소집훈련과 3월 A매치에도 유럽파들을 부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제대로 준비할 시간은 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펼칠 3주간의 훈련이다. 역대 대표팀도 이 기간 조직력을 끌어올려 본선에 출전했다.
그런데 그 사이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팬들은 또 다시 맹목적으로 히딩크의 이름을 연호할 수밖에 없다. 신 감독에 대한 신뢰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면 급기야 히딩크 재부임설이 힘을 받게 될 수 있다. 여론에 민감해 하는 협회가 등 떠밀리듯 막판에 히딩크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이 1%라도 있는 한 신태용 호는 소신껏 순항할 수 없다. 신태용호는 타임 테이블을 본선에 맞춰두고 역산으로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시점이다. 결과를 완성해가는 과정이 때로는 썩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불가피한' 과정이라면 이 역시 지켜보고 기다려 줘야 한다. 하지만 '히딩크 유령'이 존재하는 한 이런 계획적인 준비는 불가능해 진다. 당장 눈 앞에 걸린 매 평가전마다 '목숨'을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도, 선수도 혼란스럽다. 대표팀이란 배가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다행히 협회 생각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향후 9개월간 '히딩크 유령'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선 신태용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것이 협회의 확고한 의중이다. 어떠한 상황이 펼쳐지더라도 신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을 치르겠다고 공언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은 "신 감독으로 월드컵 본선을 치르겠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며 "최대한 신 감독이 자신이 추구하는 공격축구를 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경험이 많은 히딩크 감독에게 자문을 구할 건 구하겠지만 우리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면초가다. 한국 축구는 난데 없는 히딩크 감독 추대론으로 인해 길을 잃은채 표류하고 있다. 혼란을 빠르게 수습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은 협회의 올바른 가이드라인 설정과 월드컵 본선 전까지 신 감독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노력이다.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