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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전부터 '다크호스'로 지목받았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생갭다 더 강하다'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지난 시즌 제주의 장단점은 명확했다. 장점은 공격이었다. 71골을 넣어 전북과 함께 최다득점 공동 1위에 올랐다. 팀내 최다골이 11골(마르셀로)에 불과했을 정도로 고른 득점력이 위력을 발휘했다. 문제는 실점이었다. 57골을 내주며 최다실점 4위에 올랐다. 막강 공격력으로 목표인 ACL 티켓을 따냈지만 지난 몇년간 발목을 잡은 수비불안은 지난해에도 이어졌다.
조성환 제주 감독은 겨우내 스쿼드 보강에 많은 공을 들였다. 강원이 이름값에 집중을 했다면 제주는 팀에 필요한 부분을 더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멘디, 알렉스 등 K리그 적응을 마친 외인 뿐만 아니라 조용형 김원일 이찬동 박진포 최현태 이창근 진성욱 등 준척들을 대거 영입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수비진이다. 조용형 김원일, 알렉스를 영입하며 기존의 오반석 백동규 권한진까지 센터백만 6명을 보유하게 됐다.
스리백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공격력은 떨어지지 않았다. 공격적 스리백으로 장점은 더욱 살리고 있다. 기록이 증명한다. 올 시즌 리그에서 기록한 6골을 6명(마그노, 이창민 안현범 권순형 이찬동 황일수)이 나눠서 넣었다. ACL까지 포함하면 8명(마르셀로나, 멘디)이 골맛을 봤다. 제주 공격의 힘은 조직력이다. 마그노, 멘디, 마르셀로 '외인 트리오'도 개인기 보다는 팀 플레이를 앞세우고 있다. 여기에 이창민 안현범 등은 플레이에 물이 올랐다. 크랙(스페인어로 혼자 힘으로 팀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는 선수를 지칭하는 말)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터질 수 있기에 더 무서운 제주의 공격력이다.
관건은 역시 여름
현 시점에서 가장 경기력이 좋은 팀은 분명 제주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가지 체크 포인트가 숨어있다. 제주는 당초 2월7일 ACL 플레이오프가 예정돼 있었다. 전북의 ACL 출전권 박탈로 H조에 배정받으며 스케줄이 꼬였지만, 제주는 그대로 2월7일 경기에 초점을 맞추고 시즌을 준비했다. 시즌은 장기레이스다. 서울, 전북 등과 같은 팀은 컨디션의 정점을 8월 이후로 맞춘다. 때문에 초반 경기력이 좋지 않다. 반면 제주는 남들보다 컨디션이 올라가 있는 상태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 '오버페이스'일 수도 있다는 조심스러운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조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선두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 경기가 더욱 중요하다"고 했다.
결국 관건은 '여름나기'다. K리그 우승의 승부처는 여름이다. 강팀들이 비로소 진정한 힘을 보이는 시기가 바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다. 하지만 제주는 여름만 되면 힘을 쓰지 못했다. 더운 날씨에 비행기로 육지와 섬을 오고 가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다. 공항에서 짐 싣고, 대기하는데만 한시간이 넘게 걸린다. 팀 재정 사정을 고려해 칸이 좁은 저가항공을 타면 가뜩이나 압력으로 부은 다리가 더 말을 듣지 않는다. 공항이 멀면 다시 한번 버스로 이동해야 하는 두 배의 고충이 있다. 조 감독은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블스쿼드를 꾸렸다. ACL 병행이 주 이유지만 힘겨운 여름을 보내기 위한 승부수이기도 하다. 그래서 조 감독은 백업 자원 관리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또 다른 변수가 있다. 상대가 제주를 강팀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이는 생갭다 큰 차이다. 일단 제주에 맞춤형 전술을 구사하는 팀이 늘어날 것이다. 상대에 밀집수비를 마주해야 한다. 상대의 견제와 신경전에 맞서야 하고,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감 속에서 싸워야 한다. 이런 분위기에서 경기를 한 경험이 많지 않은 제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조 감독은 반드시 기회를 살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 감독은 "이제 부터 내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 선수단 관리를 더 잘하고, 더 빠른 축구를 해야 한다. 방심하지 않고 기복 없이 플레이를 이어간다면 분명 우리에게 좋은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다. 과연 제주의 돌풍이 우승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올 시즌 K리그의 흥미로운 관전포인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