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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손흥민(토트넘) 선발 출전에 대한 기사가 최근 나오고 있다. 현지에서는 '손흥민 딜레마'라는 기사도 있었다. 국내에서도 '토트넘은 손흥민이 선발로 뛰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요지의 기사가 있었다. 각종 기록과 통계를 그 근거로 삼았다. 한 번 따져보기로 했다. 정말 그럴까.
그런데 이런 논리라면 선수 이름만 바꾼 명제를 만들어낼 수 있다. 손흥민 말고 그 3번의 패배 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선 선수들이 대상이다.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 등이다. 이들도 손흥민과 마찬가지다. 그들이 선발로 나서지 않은 경기에서 무패를 달렸기 때문이다. 토트넘의 넘버2 골키퍼인 미첼 포름도 마찬가지다. 미첼 포름은 올 시즌 리그에서 3경기만 나왔다. 1승2무를 거뒀다. 무패행진 중이다.
3패의 상대도 고려해야 한다. 토트넘의 3패 경기는 다음과 같다. 11월 26일(이하 현지시각) 13라운드 첼시 원정(1대2 패배), 12월 11일 15라운드 맨유 원정(0대1 패배), 2월 11일 25라운드 리버풀 원정(0대2 패배)이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기기 쉽지 않은 경기였다. 여기에 첼시 원정 당시 토트넘은 토비 알더베이럴트가 부상, 대니 로즈는 5번째 경고로 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토트넘은 좋은 경기를 펼쳤다. 손흥민은 계속 상대 윙백 뒷공간을 파고들었다. 앨런 시어러 등 BBC 패널들도 손흥민을 칭찬했다. 리버풀 원정의 경우에도 로즈가 부상으로 빠졌다. 수비진에 구멍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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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머지 10경기를 살펴보는 것이 의미있다. 그 10경기에서 토트넘은 8승 2무를 기록했다. 좋은 기록이다. 다만 손흥민이 만들어낸 승점을 따지면 다소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즉 토트넘이 지거나 비기고 있을 때 손흥민이 들어간 경우다. 투입된 뒤 토트넘이 골을 넣어 무승부 혹은 승리를 거두었다면 분명 손흥민은 팀에 도움을 줬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10경기 가운데 총 3번이 있다.
10월 15일 8라운드 웨스트브로미치와의 원정경기에서 손흥민은 후반 17분 들어갔다. 토트넘은 후반 44분 알리의 골로 1대1로 비겼다. 11월 19일 12라운드 웨스트햄과의 홈경기에서 손흥민은 후반 27분 투입됐다. 1-2 상황이었다. 이후 토트넘이 2골을 넣어 3대2로 이겼다. 이 2골 모두 사실상 손흥민이 만들어냈다.(아래에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1월 21일 22라운드 맨시티 원정에서는 0-0 상황이던 후반 1분 손흥민이 들어갔다. 이후 양팀은 난타전을 벌였다. 손흥민은 1-2로 지고 있던 후반 32분 동점골을 만들어냈다. 이렇게 손흥민이 기여한 승점은 5점(1승2무)이다. 이런 경우 토트넘의 승점 획득에 손흥민이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기 힘들다.
여기에 손흥민은 12월 28일 18라운드 사우스햄턴 원정경기에서도 교체투입됐다. 3-1로 이기고 있던 후반 40분 쐐기골을 넣었다. 팀 승리에 도움이 됐다.
분명 '3패'는 존재한다. 다만 그 3패가 다 손흥민 때문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그 3패를 상쇄할 수 있는, 즉 손흥민이 기여한 1승 2무도 함께 존재한다.
현지 기사
현지 기사도 손흥민을 비난했다. 1월 31일 밤 올라온 기사였다. 런던 이브닝스탠다드는 '손흥민 난제(Son Conundrum)'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손흥민은 케인, 알리, 에릭센보다 훨씬 위협적이었다. 다만 그는 실망스러운 상황 판단, 부정확한 볼 터치가 잦다'고 했다.
런던 이브닝스탠다드가 작성한 기사의 대상 경기는 1월 31일 23라운드 선덜랜드 원정 경기다. 토트넘은 0대0으로 비겼다. 손흥민의 경기력을 '통계'로 살펴보자. 슈팅은 1개를 날렸다. 유효슈팅은 없었다. 키패스는 2개, 패스 성공률은 89.7%, 드리블 돌파는 1회였다.
슈팅은 다소 적었다. 하지만 케인도 1개였다. 슈팅은 에릭센이 가장 많았다. 유효슈팅 2개 포함 총 3개를 날렸다. 델레 알리는 슈팅 2개를 때렸다. 유효 슈팅은 없었다. 이브닝스탠다드는 '실망스러운 상황 판단, 부정확한 볼터치'를 꼭 집었다. 통계적으로 봤을 때는 의아한 평가다. 이날 손흥민은 72분을 뛰면서 찬스를 만들어내는 키패스를 2개 찔러넣었다. 에릭센의 3개에 이어 팀내 2위다. 에릭센은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볼터치 실수는 1번밖에 없었다. 알리는 3차례나 볼터치 실수를 했다. 알리는 단 하나의 키패스도 찔러넣지 못했다. '통계'로만 본다면 '실망스러운 상황 판단, 부정확한 볼터치가 잦다'는 비난은 손흥민보다는 알리가 더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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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과의 궁합도 떨어진다는 평가가 있었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케인은 올 시즌 EPL에서 19골을 넣었다. 이 가운데 8골은 손흥민이 선발출전한 경기, 11골은 손흥민이 선발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 넣었다. 때문에 손흥민과 케인의 궁합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일단 손흥민과의 궁합이 맞지 않는다고 하려면 손흥민이 플레이에 관여하지 않은 케인의 골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 코너킥이나 프리킥골도 제외하는 것이 맞다. 키커가 손흥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롯이 케인 자신의 능력으로 만든 골도 빼야 한다. 팀동료와의 '궁합'을 통해 만든 골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바탕을 두고 '손흥민이 선발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 케인이 넣은 11골을 면밀하게 살펴보자.
11월 19일 12라운드 웨스트햄과의 홈경기에서 넣은 케인의 2골은 제외해야 한다. 케인은 후반 44분과 46분 연속골을 넣었다. 44분에 넣은 골은 '이 경기에서 교체로 들어간' 손흥민이 사실상 도왔다. 손흥민을 왼쪽을 파고들었다. 그리고 크로스를 올렸다. 상대 골키퍼 손을 맞고 케인 앞으로 왔다. 케인이 마무리했다. 2분 뒤 골은 페널티킥이었다. 이것도 손흥민이 문전 안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다가 상대의 파울을 유도해냈다.
나머지 9골 가운데 세트피스 골을 총 3골이다. 12월 28일 18라운드 사우스햄턴 원정경기 후반 6분 코너킥 상황에서 넣은 헤딩골, 2월 26일 26라운드 스토크시티와의 홈경기 전반 31분 코너킥 상황에서 넣은 왼발 발리슈팅골, 36분 에릭센이 툭 차준 프리킥을 그대로 슈팅해 상대 수비수맞고 굴절되어 들어간 골이다.
6골이 남았다. 오롯이 케인의 개인 기량으로 만들어낸 골은 2골이다. 2월 26일 스토크시티전 후반 14분 상대 수비수의 클리어링 실수로 나온 볼을 그대로 다이렉트 슈팅으로 만들어낸 골. 그리고 3월 5일 27라운드 에버턴과의 홈경기 전반 20분 드리블 돌파에 이은 강력한 무회전 중거리슛골이다.
이제 남은 것은 4골이다. 1월 14일 21라운드 웨스트브로미치와의 홈경기. 전반 11분 에릭센의 패스를 받아 넣은 골. 후반 31분 알리의 크로스를 발리 슈팅으로 연결해 만든 골. 후반 36분 알리의 패스를 받아 만든 골이 있다 여기에 3월 5일 에버턴전 후반 11분 알리의 패스를 받아 만든 골까지다. 근거로 든 11골 가운데 단 4골만이 케인이 손흥민이 아닌 다른 선수와의 호흡으로 만든 골이다. 확실한 연관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실력
이같이 모든 논란은 최근 손흥민이 주춤하기 때문이다.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4-2-3-1 전형 대신 3-4-2-1 전형을 들고 나오고 있다. 윙어가 필요없는 형태다. 윙백이 윙어를 대신한다. 대신 케인 아래 두 선수(에릭센, 알리)는 중앙으로 파고든다. 손흥민과 무사 시소코 등 윙어들이 설 자리가 없을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걱정의 목소리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손흥민은 실력으로 이 걱정들에 대답해야 한다. 그의 과제다.
다만 손흥민을 걱정 할 때, 특히 기록과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미국의 유명 작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냥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