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발품스토리]英-FIFA, 양귀비 전쟁 그 이면의 이야기들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6-11-09 08:26 | 최종수정 2016-11-09 08:31

11월 11일 제1차 세계대전 종전기념일을 앞두고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국가들은 '양귀비꽃'을 들고 전몰자를 추모한다. 리버풀과 왓포드의 경기 직전 추모 행사에 나온 양귀비꽃. ⓒAFPBBNews = News1


[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축구종가와 국제축구연맹(FIFA)이 벌이고 있는 '양귀비 전쟁'.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다.

양귀비꽃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11일 런던 웸블리에서 2018년 러시아월드컵 F조 예선전을 치른다. 이에 앞서 양 축구협회는 FIFA에 선수들이 양귀비꽃 문양을 유니폼에 착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다. 북아일랜드 축구협회도 아제르바이잔과의 홈경기에 양귀비꽃 문양이 새겨진 검은 완장 착용 허락을 바라고 있다. 웨일스축구협회 역시 카디프에서 열리는 세르비아전에서 양귀비꽃 착용을 바라는 눈치다.

11일은 제1차 세계대전 종전일이다. 영 연방 국가에서는 1차대전 전몰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양귀비꽃 배지를 단다. 시작은 시 한 편이다. 1차대전 당시 벨기에 플랑드르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전사자들이 묻힌 땅 위로 붉은 양귀비꽃들이 피어났다. 캐나다 쿤의관이었던 존 매크레이는 이 꽃을 보고 '플랑드르 벌판에서'라는 시를 지었다.

'플랑드르 벌판에 양귀비 꽃이흔들리네/줄줄이 선 십자가들 사이에/...(중략) 양귀비꽃이 자랄지라도/우리는 잠들지 못할 걸세'

이 시 이후 양귀비꽃은 영 연방 국가 추모의 상징이 됐다.

2015년 11월 7일 영국 맨체스터 올드트래퍼드에서 맨유와 웨스트브로미치의 경기가 열렸다. 웨스트브로미치의 제임스 맥클린이 맨유 마르코스 로호와 볼경합을 벌이고 있다. 맥클린은 EPL선수들 중 유일하게 '양귀비꽃'을 달지 않고 경기를 뛰었다. ⓒAFPBBNews = News1

반감

문제는 그 이후다. 양귀비꽃의 의미가 제1차 세계대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전몰자 추모 정도에만 한정됐으면 괜찮았다. 하지만 영국은 양귀비꽃의 의미를 확산시켰다. 영국군을 미화하는 상징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반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아일랜드 국적의 제임스 맥클린(웨스트브로미치)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2012년부터 양귀비꽃을 도입했다. 11월 11일을 즈음한 경기에 모든 선수들에게 양귀비꽃 문양이 박힌 유니폼을 준다. 경기 전 대형 양귀비꽃 조형물을 놓고 묵념도 한다. 단 한 명 예외가 매클린이다.

맥클린은 EPL 선수들 가운데 유일하게 양귀비꽃을 달지 않는다. 많은 영국인들이 맥클린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하게 자신의 소신을 지켰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이유가 있다. 그는 북아일랜드 런던데리(데리)에서 태어났다. 1972년 1월 30일 일요일. 이곳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영국군은 카톨릭교도 차별을 반대하는 북아일랜드 평화 시위대에게 발포했다. 무고한 시민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13명이 다쳤다. 당시 영국은 시위대가 먼저 공격했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2010년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사건이 비무장 시민에 대한 무차별 학살임을 인정했다. 공식 사과도 했다.

데리 출신인 맥클린에게 '양귀비꽃'은 자신의 동포를 학살한 영국군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양귀비꽃이 1,2차대전 전몰자를 추모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영국 군인들 모두를 포함하고 있다. 내가 이를 거부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맥클린과 같은 이유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람들은 이 시기 양귀비꽃 다는 것을 거부하곤 한다.

아일랜드는 3월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부활절 봉기' 100주년을 기념하는 문양을 유니폼에 새겼다. FIFA는 이를 징계하려고 하고 있다. ⓒAFPBBNews = News1

형평성

FIFA는 이미 이들의 요청을 기각했다. 유니폼에 정치나 종교, 상업적 메시지를 표시할 수 없도록 한 규정을 위배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이미 FIFA는 아일랜드 축구협회 징계 절차에 들어갔다. 아일랜드 축구협회는 3월 열린 스위스와의 친선경기에서 '부활절 봉기(이스터 라이징) 로고'를 박고 출전했다.

부활정 봉기는 1916년 4월 24일 당시 일어난 사건이다. 아일랜드는 영국의 지배하였다. 1800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속국으로 만들었다. 아일랜드 독립 비밀조직인 '아일랜드 공화주의형제단'은 부활절 주간 월요일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수도 더블린 주요 거점을 점령했다.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했다. 하지만 진압하러온 영국군에게 패했다. 6일만에 진압됐다.

비록 실패했지만 부활절 봉기는 아일랜드 독립의 신호탄이 됐다. 2년 후 아일랜드 의회는 독자적으로 독립을 선언했다. 2년 반동안 영국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1921년 7월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축구협회는 부활절 봉기 100주년을 맞이해 유니폼에 로고를 새기는 것으로 이를 기념했다. FIFA는 이를 '정치적 상징물'라며 징계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이란도 FIFA의 징계를 받았다. 이란은 10월 11일 한국과의 월드컵 예선전을 앞두고 종교 지도자 압바스 이븐 알리는 추모하는 행사를 했다. 이에 FIFA는 3만7000스위스프랑의 벌금을 부과했다.

사진캡쳐=KBS2

FIFA로서는 아일랜드, 이란의 경우과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웨일스의 주장은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에 잉글랜드 등의 경우를 허용한다면 다른 나라들의 행위도 규제할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일본은 축구에서 '욱일기'로 불리는 전범기 사용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스페인 카탈루냐도 자신들의 분리 독립을 위해 축구를 이용하려고 하고 있다. FIFA가 강하게 나가지 않으면 혼란이 일 수 밖에 없다.

견제

여기에 영국 연방, 특히 잉글랜드를 견제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지아니 인판티노 FIFA회장은 2월 셰이크 살만 빈 에브라힘 알 칼리파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과의 접전 끝에 수장이 됐다. 인판티노 회장 당선의 뒤에는 영국이 있었다. 인판티노 회장은 출마 기자회견을 영국 웸블리에서 했다. 조제 무리뉴 감독도 대동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는 2030년 월드컵 유치를 위해 인판티노를 밀었다. 때문에 사사건건 인판티노 회장을 간섭하고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가 양귀비꽃을 달고 있다. ⓒAFPBBNews = News1

영국은 비판 여론 일색이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2일 하원에서 "정말 바보 같은 짓"이라며 "추모상징물을 착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FIFA를 비판했다. 잉글랜드 축구협회도 "양귀비꽃은 전몰자추모의 상징일뿐 정치나 종교, 상업선전물이 아니며 특정 역사적 사실과도 관계가 없다"는 성명까지 내면서 FIFA에 양귀비꽃을 모티브로 한 추모상징물 착용을 허용하라고 촉구했다. 이에 파트마 사모라 FIFA 사무총장은 "전쟁으로 고통받은 것은 영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고 일축했다.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