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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신태용 감독의 '아빠 리더십', 골짜기 세대 깨웠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8-11 23:45


올림픽 축구대표팀 10일 오후(현지시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 C조 멕시코와의 3차전 열린 브라질리아 마네 가린샤 경기장에서 경기를 펼쳤다. 신태용 감독이 손흥민에게 이야기를 하고있다./2016.8.10/브라질리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D

"신태용 감독님은 정말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분이다. 부족한 선수지만 항상 챙겨주고 좋아해 주시고 또 좋은 선수라고 얘기해 주신다." 한국 축구의 간판인 와일드카드 손흥민(24·토트넘)이 말한 행복론, 그 중심에 신태용 감독(46)이 있었다.

"걱정마! 8강 진출 한다니까." 괜한 소리가 아니었다. 호언장담은 딱 맞아 떨어졌다. 신 감독은 약속을 지켰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 '황금 세대'의 뒤를 이은 '골짜기 세대', 신 감독이 그림자를 거뒀다. 골짜기에서 탈출해 정상을 향한 황금 가도를 달리고 있다. 올림픽 사상 첫 조별리그 1위, 첫 2회 연속 8강 진출 등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밑거름이 있다. 신 감독의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했다. 손흥민의 말대로 '아빠 리더십'이 통했다.

출발부터 달랐다. 그는 성격상 꾸미는 것을 싫어한다. 매사에 직설적인 편이다. 모든 것을 인정했다. '골짜기 세대'란 평가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신태용 감독이 2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살바도르 마노엘 바라다스(Barradao) 경기장에서 선수들 피지컬 셔킷 트레이닝을 지켜보고 있다. /2016.8. 2/ 살바도르=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I/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 신 감독에게는 호재 아닌 호재였다. '골짜기 세대'란 말을 철저하게 역이용하며 이를 강력한 동기부여로 삼았다.

자연스레 선수들은 독기를 품었다. 외부의 부정적 시선이 내부적 단결을 자극했다. 더 끈끈해 졌다.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힘을 모으는 길 밖에 없었다. 하나가 돼가는 과정 속에서 신 감독은 희망을 봤다. "골짜기 세대란 말 때문에 선수들이 오히려 더 똘똘 뭉친다. 이런 분위기라면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기대가 현실이 됐다.

치밀하게 준비된 '신의 예언'은 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됐다. 그는 브라질 현지 답사 후 4월 20일 귀국한 자리에서 조별리그 성적으로 '2승1무'를 언급했다. "하겠다"고는 하지 않았다. 조 1위를 해야 8강 여정이 편하다는 얘기 끝에 2승1무의 조합이 탄생했다. 그 당시 이미 독일전을 조별리그의 분수령으로 꼽았다. 피지는 대학팀 수준의 전력으로 파악했다. 문제는 멕시코였다. 디펭딩챔피언 멕시코는 C조 최강으로 평가했다. 비록 독일과 무승부를 거두며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최종전 전략이 수정됐지만 8강행 전선은 더 흥미로웠다.


◇브라질리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선수단 내부적으로는 수직 구도를 철저히 파괴했다. 선수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창의적인 플레이를 발휘하도록 유도했다. 채찍보다 당근이 우선이었다. 다만 칭찬을 곁들여 개선해야 할 부분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일례로 피지와의 조별리그 1차전 하프타임은 신 감독의 진면목이 잘 드러난 순간이었다. 전반을 1-0으로 앞섰지만 경기력은 신통치 않았다. 특히 최약체를 맞아 45분동안 단 한 골밖에 넣지 못한 것은 치욕이었다.


하지만 신 감독의 반응은 달랐다. 주장 장현수(25·광저우 부리)는 "전반전에 다소 실망스러운 경기력을 보였지만 감독님이 혼쭐을 내는 것보다는 독려와 위로를 해주셨다"고 말했다. 권창훈(22·수원)도 "감독님은 괜찮다고 하면서 왜 안풀리는지 설명해 주셨다. 밀집수비를 뚫을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후반전에 감독님 말대로 하니 잘됐다"며 "전반에는 상대가 워낙 좁게 서니까 사이드를 좀 공략해야 하는데 너무 중앙만 고집했다. 거기서 실수도 많이 나오고, 찬스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감독님이 후반에는 측면으로 많이 공격해서 풀어나가라고 말하셨고 그렇게 했더니 득점이 많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놀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자는 것이 신 감독의 신넘이다. 피지전 후반에만 7골이 나온 데에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신태용 감독은 제 식구들은 철저하게 보호한다. 믿고, 신뢰하는 가운데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산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도 곁들인다. 골짜기 세대들이 맘껏 뛰놀며 즐길 수 있는 '놀이터'의 울타리를 자청한 것이다.

신 감독은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지도자다. 흐름을 간파하는 능력이 탁월한다. 리우올림픽 축구도 반환점을 돌았다. 8강, 4강, 결승(3~4위)전만 남았다. 신 감독은 8강전을 기다리고 있다. 14일 오전 7시(한국시각) 브라질 벨루오리존치의 미네이랑 스타디움에서 온두라스와 8강전을 치른다.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신 감독의 눈빛이 매서울만큼 반짝이고 있다.
벨로오리존치(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10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브라질리아 마네 가린샤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C조 3차전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신태용 감독이 물을 마시고 있다. /2016.8.10/ 브라질리아=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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