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바도르]피지 감독의 통탄 '1분45초' 3골에 무너졌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6-08-05 11:07


4일 오후(현지시간) 브라질 사우바도르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2016리우올림픽 남자축구 조별리그 C조 1차전 한국과 피지와의 경기에서 권창훈 선수가 골을 성공한 뒤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2016.8.4./사우바도르=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k

1-0으로 리드했지만 60분간 탄식이 흘렀다.

피지는 분명 적수가 아니었다.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렸지만 번번이 2% 부족했다. 답답한 흐름에 땅을 쳤다. 분위기도 미묘했다. 피지 축구의 사상 첫 올림픽 출전이다. 피지는 줄기차게 수비만 했지만 기가 살았다. 브라질 팬들도 일방적으로 '약자'인 피지를 응원했다. 신태용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표정도 굳어 갔다. 거기까지였다.

61분인 후반 16분부터 딴 세상이 펼쳐졌다. 후반 16분과 17분, 불과 1분45초 동안 무려 3골이 터졌다. 빗장이 풀리자 골은 폭우처럼 쏟아졌다.

신태용호가 2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조별리그 첫 승을 선물했다. 올림픽 본선 최다 득점과 최다골 차 승리도 갈아치웠다.

2016년 리우올림픽 대한민국 선수단의 첫 단추인 올림픽대표팀이 서전을 완승으로 장식했다. 신태용호는 5일(이하 한국시각) 브라질 사우바도르의 폰치 노바 아레나에서 열린 피지와의 2016년 리우올림픽 조별리그 C조 1차전에서 8대0으로 대승했다. 승점 3점을 챙긴 대한민국은 C조 선두로 올라섰다. 앞서 벌어진 독일과 멕시코전에선 1대1로 비기며, 두 팀은 승점 1점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

신 감독은 공격적인 카드를 꺼내들었다. 황희찬(잘츠부르크) 류승우 권창훈(수원 삼성)을 스리톱으로 세우는 4-3-3 포메이션을 내세웠다. 중원에는 문창진 이창민(제주)을 내세웠고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엔 장현수(광저우 부리)를 배치했다. 포백 라인은 심상민(서울 이랜드) 정승현(울산 현대) 최규백(전북 현대) 이슬찬(전남), 골문은 구성윤(콘사도레 삿포로)이 지켰다.

첫 경기의 부담감 때문일까. 전반전은 이상할 정도로 엇나갔다. 전반 볼점유율은 76대24, 슈팅수는 15대2였다. 하지만 골은 단 하나 뿐이었다. 전반 2분 황희찬이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시도한 슛으로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피지의 역습을 막는 과정에서 최규백이 위험한 태클로 경고를 받는 등 다소 긴장한 모습도 드러냈다. 전반 4분 이슬찬이 아크 정면에서 시도한 왼발슛이 굴절되어 골문 구석으로 향했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혀 골로 연결되진 못했다.

피지의 역습은 한 차례 반짝했다. 전반 13분 왼쪽 측면서 한번에 이어준 패스로 아크 오른쪽까지 침투, 유일한 프로선수인 로이 크리슈나가 오른발 슛으로 연결했다.


피지는 필드플레이어 10명 전원이 수비에 가담하며 극단적인 밀집 수비를 펼쳤다. 다행히 전반에 골은 터졌다. 류승우가 해결사로 나섰다. 전반 32분 권창훈이 피지 진영 페널티에어리어 바깥 오른쪽 측면에서 길게 올린 크로스를 가슴으로 받은 뒤 수비수 두 명 사이에서 왼발을 갖다대며 골문 오른쪽 구석을 흔들었다.

류승우는 6분 뒤 추가골 기회도 만들었다. 피지 진영 페널티에어리어 내 왼쪽에서 드리블하다 상대 수비수 태클을 유도,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하지만 키커로 나선 문창진의 왼발슛이 왼쪽 골대를 때렸다.

후반 초반에도 비슷한 양상이었다. 대반전을 시작한 것은 후반 16분 00초였다. 부진했던 권창훈이 문창진의 패스를 왼발슛으로 연결, 골망을 흔들었다. 소나기 골의 서곡이었다. 1분 뒤인 후반 17분 00초에도 권창훈이었다. 이번에는 류승우의 크로스를 멀티골로 화답했다. 한국의 4번째 골은 45초 뒤 다시 터졌다. 이날 최고의 활약을 펼친 류승우가 다시 한번 골문을 열었다. 1분45총안 3골을 터트린 것은 남녀 통틀어 각급 대표팀 국제경기 최단 시간이다.

신 감독은 후반 24분 황희찬 권창훈 대신 석현준(FC포르투)과 손흥민(토트넘)을 투입했다. 조커로 나선 둘 다 골맛을 봤다. 손흥민은 후반 27분 류승우가 또 다시 얻은 페널티킥을 골로 연결했고, 석현준은 후반 32분과 후반 45분 릴레이 골을 터트렸다. 끝이 아니었다. 류승우는 경기 종료 직전 해트트릭을 완승하며 대미를 장식했다.

한국 축구가 올림픽 본선 1차전에서 승리한 것은 20년 만이다. 한국은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조별리그 1차전에서 가나를 1대0으로 꺾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4회 대회 연속 무승부 또는 패배를 기록했다. 한 경기 8골 이상 득점과 8골 차 승리도 새로운 역사다. 기존 최고기록은 68년 전인 1948년 런던올림픽에서 멕시코를 상대로 5대3으로 승리한 것이다. 그동안 3골 차 승리도 없었다. 2골 차가 최대치였다.

류승우는 첫 해트트릭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됐다. 올림픽 본선에선 2골 기록한 선수는 3명이 있다. 정국진(1948년·멕시코전) 조재진(2004년·말리전) 이천수(2004년·파라과이전)였다. 해트트릭은 류승우가 최초다.

프랭크 파리나 피지 감독은 "가장 큰 문제는 짧은 시간에 3골을 허용한 것이다. 실수에서 비롯된 실점이었다. 3골을 내주며 무너졌다. 이것이 오늘 경기의 터닝포인트였다"며 "3실점 가운데 2골이 수비 실수로 나왔다. 피지는 소국이다. 반면 한국은 아시아의 맹주다.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전반을 잘 버텼지만 후반 내리 3골을 내주면 복구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피지를 제압한 신태용호는 8일 오전 4시 독일과 조별리그 2차전을 치른다.
사우바도르(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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