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의 발품스토리]'헛심' 리버풀, '실리' 세비야 희비교차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6-05-19 11:14 | 최종수정 2016-05-19 11:15

바르피셔 플라츠


[바젤(스위스)=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이곳에서도 "유 네버 워크 어론", 저곳에서도 "유 네버 워크 어론". 온통 "유 네버 워크 어론"이었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불러야할 곳 그리고 그 시간대에는 울리지 않았다.

리버풀 팬들은 한국 축구팬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한 문장을 뼈에 새겨야 하는 날이었다. '설레발은 필패'라는 문장이다. 하루 종일 시끄러운 것은 리버풀이었다. 그리고 실리는 세비야가 취했다. 2015~2016시즌 유로파리그 결승전이 열린 5월 18일 스위스 바젤을 찾았다.

제2의 리버풀

스위스 바젤은 제2의 리버풀이었다. 이미 전날부터 리버풀팬들은 바젤 중심가를 점령한 채 분위기를 띄웠다. 경기 당일은 더했다. 이곳저곳 모두 리버풀 팬이었다. 리버풀 구단은 결승전 경기가 있기 전 "입장권이 없는 팬들은 바젤에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이 구단의 말을 잘 들을리가 없었다. 입장권이 없는 팬들은 8000여명이나 됐다. 이들을 포함한 2만5000여명의 팬들이 바젤에 왔다. 1만7000여 세비야팬들보다 훨씬 많았다.

리버풀 팬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무례했다. 유럽축구연맹(UEFA)과 바젤 시당국은 바젤 중간을 흐르는 라인 강을 기준으로 북쪽 클라라 플라츠에는 세이뱌 팬존을, 남쪽 바르피셔 플라츠에는 리버풀 팬존을 만들었다. 세비야 팬들은 대부분 구역을 지켰다. 남쪽으로 가는 팬들은 많지 않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구역에서 조용하게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으면서 경기를 준비했다.

하지만 리버풀 팬들은 달랐다. 세비야 팬들 구역에 나타나 분위기를 흐렸다. 크게 노래를 부르는 것은 기본이었다. 욕설을 하고 지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대부분 무리를 지어 다녔다. 한 손으로는 맥주를 들고 있었다. 세비야 팬들은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다.

남쪽 바르피셔 플라츠로 향했다. 300여미터 전방부터 맥주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찌그러진 맥주캔, 깨진 맥주병들이 어지럽게 널러져 있었다. 맥주를 마시고 그냥 바닥에 버렸다. 그러고는 노래를 부르며 소리를 질렀다. 광장 옆 건물 벽면에 올라가서 걸개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조금만 발을 삐끗해도 추락이었다.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그냥 걸개를 거는 데만 집중했다. 홍염도 사용했다. UEFA는 홍염 사용을 엄하게 금지한다. 벌금도 매긴다. 하지만 이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가장 많이 나온 노래는 '유 네버 워크 어론(You never walk alone)'이었다. 리버풀이 승리를 앞두고 있을 때 부르는 노래다. 이곳저곳에서 나왔다. 과유불급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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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희 그리고 실망


경기 시작 직전 바르피셔 플라츠는 발디딜 틈이 없었다. 스티븐 제라드의 응원 메시지가 나오자 그의 응원가를 불렀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 인터뷰에는 그의 노래를 불렀다. 바르피셔 플라츠는 제2의 안필드였다.

전반 35분 다니엘 스터리지가 선제골을 넣었다. 다들 기뻐했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모습이었다. 곳곳에서 리버풀을 외쳤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동점골을 내줬다. 리버풀 팬들의 분위기가 묘해졌다. 후반 19분과 25분 코케에게 연속골을 내줬다. 바르페셔 플라츠는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세비야 선수들이 쓰러져서 오래 있을 때마다 야유만 쏟아질 뿐이었다. 그리고 한숨만이 가득했다.

결국 경기는 세비야의 3대1 승리로 끝났다. 세비야는 사상 최초로 유로파리그 3연패에 성공했다. 리버풀 팬들은 '유 네버 워크 어론'을 부를 수가 없었다.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바르피셔 플라츠를 빠져나가기 바빴다.

북쪽에 있는 세비야 팬존으로 달려가봤다. 그들의 환희를 담고 싶었다. 하지만 헛수고였다. 세비야 팬들은 '경기 입장권이 없는 팬들은 바젤로 오지 말라'는 구단의 권고를 잘 따랐다. 세비야 팬존은 썰렁했다. 세비야 팬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리고 깨끗했다. 찌그러진 맥주캔이나 깨진 맥주병을 찾을 수가 없었다.

경기 후에도 세비야 팬들의 뒷풀이는 조촐했다. 경기장 주변에서 '장외 서포팅'을 했다. 이후 몇몇 펍이나 숙소에서만 우승을 기뻐했다.

반면 리버풀 팬들은 바젤 시내에 가득했다. 좀비처럼 멍한 표정과 풀린 눈으로 바젤 시내를 돌아다녔다. 쓰린 속을 달래줄 맥주를 찾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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