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TD'라는 말이 있다.
매 시즌 돌풍을 일으키는 팀은 있었다. 지난 시즌에도 사우스햄턴이 2위에 오르는 등 초중반까지 선두권을 형성했다. 하지만 레스터시티는 다르다. 중반을 넘어선 23라운드까지 그들이 기록하고 있는 순위는 놀랍게도 '1위'다.
EPL 이변의 주인공은 12월을 기점으로 추락했다. 악명 높은 박싱데이를 넘지 못했다. 박싱 데이는 성탄절 다음날인 26일이다. 다른 빅리그들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는 동안, EPL은 살인적인 일정을 소화한다. 1월 초까지 8~9일 사이에 3경기를 치러야 한다. 상대팀의 엄청난 견제, 순위를 지켜야 한다는 압박감, 더블스쿼드를 갖추지 않은 이상 돌풍의 팀이 박싱데이를 넘기란 쉽지 않다. 실제 레스터시티도 박싱데이에서 주춤했다. 리버풀에게 패배했고 맨시티와 본머스에게 무승부를 거뒀다. 0득점-1실점이라는 다소 우울한 기록지를 받은 채 박싱데이를 2무1패로 마무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스터시티의 순위는 여전히 선두권을 지키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빅클럽의 위기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첼시는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부진이 두드러지며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맨시티는 호셉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할때까지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다. 맨유는 여전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스널은 아름다운 승리와 어이없는 패배를 반복하며 '아스널' 스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윌슨은 '빅클럽이 강력한 아우라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예전에는 약팀들이 빅클럽과의 경기를 포기하고 대신 다른 대전에 집중했다. 하지만 지금은 빅클럽을 이길 수 있는 팀으로 여기고 있다. 이 같은 인식의 변화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고 있다. 빅클럽이 약팀과의 경기에도 전력을 다하며 전체적인 리그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EPL팀들이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는 이유기도 하다.
이처럼 약팀들이 도약할 수 있었던데는 천문학적인 중계권료가 한 몫을 했다. EPL 사무국은 중계권료를 50%를 구단에 균등 배분하며 나머지 50%는 성적과 생방송 노출 빈도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영국 스포츠 전문 방송 스카이 스포츠·BT 스포츠와 2016~2017시즌부터 3년간 진행되는 새로운 중계권 계약 금액은 무려 51억 3600만 파운드(약 8조8275억원)다. 지난 시즌 15위였던 뉴캐슬이 중계권료로 벌어들인 1억140만 유로(약 1343억원)는 독일 분데스리가 최강 바이에른 뮌헨의 중계권료(1억610만 유로·1405억 원)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EPL 내에서는 약팀이지만 수익만 놓고 본다면 세계적 최고수준이다. 21일(한국시각) 영국의 세계 4대 회계법인 딜로이트가 공개한 '2016 딜로이트 풋볼 머니 리그(DFML)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30팀 중 무려 17개팀이 EPL 소속이었다. 이 같은 수익을 바탕으로 수준급 선수들을 더했고, 이는 전력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강팀과 약팀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요동치고 있는 EPL. 레스터시티의 돌풍은 그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예고하는지 모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news@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