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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스포츠계 감독에 대해 '독이 든 성배'를 들었다고 한다.
선수단의 주장은 경기장 안에서 또다른 사령관이다. 흔히 어느 선수가 주장 완장을 찼다고 하면 완장에 대한 무게감을 먼저 질문한다.
감독이 '독이 든 성배'라면 주장은 '알고도 마시는 쓴잔'이나 다름없다. 보통 주장은 선수단의 투표를 통해 뽑는다. 올 시즌 수원 염기훈이 3년 연속 주장으로 선임된 과정도 그랬고, 과거 박지성(은퇴)이 허정무 감독 시절 A대표팀 주장을 맡을 때도 그랬다.
구단, 협회의 선택으로 임명되는 감독과 달리 주장은 선발 과정부터 동료 선·후배의 전폭적인 신뢰를 밑바탕으로 한다. 선수들의 '신뢰' 평가 기준은 평소 함께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각인된 것이다.
그만큼 주장은 힘들고 괴로울 수밖에 없다. 축구스타 박지성에게서 대표적인 사례를 볼 수 있다. 박지성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준비하던 2008년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의 권유로 주장을 맡게 됐다. 이를 계기로 '국민캡틴'이라는 새 별명을 얻었다. 당초 박지성은 주장을 고사했다. 초등학교 시절 주장을 할 때 워낙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 꺼려졌다고 했다. 훗날 "솔직히 주장을 맡고 싶지 않았고 주장 자리를 좋아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캡틴 박지성'은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축구 최초의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 쾌거를 견인하는 등 대성공이었다. "박지성이 일반적인 주장의 성격은 아니지만 솔선수범하는 조용한 리더십이 통할 것"이라는 허 감독의 판단이 통한 것이다.
박지성뿐 아니라 올해 전북의 새 주장이 된 GK 권순태도 "정신없다. 부담만 늘었다. 그저 '살려달라'고 외치고 싶다"며 '당선'소감을 대신했다. 이처럼 주장은 쓰디 쓴 자리다. 그들의 24시를 보면 그렇다. 주장이라는 이유로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해야 한다. 기상부터 아침 훈련, 식사, 오후 훈련, 취침 마무리까지 '룰'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 없다. 젊은 혈기에 감독 눈치봐가며 몰래 '야식' 사다먹는 재미도 누려봐야 하는데 꿈도 못꾼다. 지난해 인천에서 주장을 했던 GK 유 현(서울)은 "일부러라도 '범생이' 역할을 해야 한다. 항상 모범적이고 리드해야 한다는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평소 행동뿐 아니라 휴식시간도 누리기 힘들다. 주장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가교가 되는 것이다. 감독 대신 쓴소리를 하고 선수 대신 어려운 건의를 위해 '총대'를 메야 한다.
코칭스태프의 호출에 불려가기 일쑤다. 후배들의 이런저런 민원과 고충을 들어주는 것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특히 후배를 강하게 휘어잡는 '카리스마형'이라면 괜히 '적'까지 많아질 수도 있다. 부산 아이파크가 주장다운 주장이 없어서 2015년 시즌 크게 고생한 케이스다. 지난해 부산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승부근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을 때 구단 관계자는 "우리가 봐도 의욕상실처럼 보이는 선수들을 따끔하게 야단치고 채찍-포용으로 이끌어 갈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적임자가 없다"고 한탄한 바 있다. 싫은 소리 하는 걸 좋아할 사람 어디 있겠느냐마는 주장은 때로 '악역'을 자청해야 한다. 그래도 주장 하나 잘 둬서 '원팀'으로 잘 굴러갔다는 평가를 들으면 그만한 보람도 없다.
결국 주장은 모든 생활에서 '1인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중책이다. 제 앞가림도 힘든 프로 세계에서 "힘들다"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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