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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가 마침내 13년 결실을 거뒀다.
2003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거둔 시민구단의 쾌거다. 수원FC는 2003년 실업축구 수원시청축구단으로 탄생했다.
창단 초기 경기도체육대회에서 우승을 도맡아 하는 경기도 지역 아마추어 축구 지존이었다. 2005년 K2(현 내셔널리그) 전기리그 우승, 챔피언결정전 준우승을 하면서 내셔널리그 강자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2007, 2008년에도 내셔널리그 챔프전 준우승을 연거푸 달성한 수원FC는 2009, 2010년에 내셔널리그 통합우승 2연패에 오르면서 내셔널리그의 명가로 떠올랐다.
결국 수원FC는 챌린지에 참가한 지 2년 만에 기존 K리그 체제의 시·도민구단이 아닌 내셔널리그 출신 처음으로 클래식까지 승격함으로써 실업축구 명문의 저력을 입증했다.
수원FC의 승강 PO 상대 부산은 이와 반대의 길을 걸었다. 부산은 K리그 1부리그의 명문이었다. 유니폼에 별 4개가 새겨진 팀이다.
창단(1983년) 후 첫 시즌이던 1984년 한국 프로축구를 평정한 데 이어 1986년 한국 프로축구 최초로 1985∼1986 아시안클럽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며 전통의 명가 역사를 화려하게 열었다.
이후 부산은 1987, 1991년 K리그 우승에 이어 1997년에 아디다스컵, 프로스펙스컵, K리그를 모조리 휩쓸며 '트리플 크라운'의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대우그룹의 몰락으로 2000년 현대산업개발에 인수되는 아픔을 겪으며 부산 아이콘스-부산 아이파크로 옷을 갈아입은 뒤에는 명가와 점점 멀어졌다. 2004년 FA컵 우승을 제외하고 K리그에서 중-하위를 맴도는 그저 그런 팀이 됐다.
대우 로얄즈 시절을 잘 아는 중년 이상의 축구인들은 말한다. "축구에 대한 투자와 지원, 관심에서 대우를 능가할 기업은 없었다. 부산 아이파크의 챌린지 강등은 사실 놀라울 일도 아니지 않은가."
결국 부산은 내셔널리그 명가 수원FC에 밀려 K리그 명가 몰락의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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