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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두 달전 K리그는 좌절했다. 여름 이적시장에서 간판급 스타들의 '엑소더스(탈출)'로 신음했다. 사실 어제, 오늘 현상이 아니었다.
'자본의 그라운드', 절망의 먹구름이 다시 걷히고 있다. 척박한 현실 속에 새로운 미래의 꽃이 피고 있다. 스타들이 빠져나간 자리는 K리그가 육성시킨 새 인물들이 채우고 있다. '가뭄의 단비' 권창훈(21·수원)의 탄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수원 삼성이 배출한 작품이다. 권창훈은 중동중 재학 시절 연령대 '넘버 원'으로 통했다. 치열한 스카우트 전쟁 끝에 수원의 유스팀인 매탄고가 권창훈을 품에 안았다. '매탄고 창단 3기'였다. 권창훈은 축구에만 전념할 수 있어 수원을 선택했다고 한다.
흐름도 절묘하게 탔다. 프로축구연맹은 2013년 '23세 이하 선수 엔트리 포함 제도'를 강제적으로 도입했다. 첫 해 23세 이하 엔트리 등록 1명, 2014년 등록 2명에 이어 올해 등록 2명 가운데 1명은 베스트 11에 포함하도록 했다. '젊은피'들이 제대로 놀 수 있는 무대가 생겼고, 권창훈도 날개를 달았다. '원석'은 '보석'이 됐다. 2015년 그는 수원의 주축으로 당당히 자리잡았다.
그리고 '보석'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따로 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었다. K리그의 숙제지만 부인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K리그에서 아무리 잘 나가더라도 태극마크를 달지 못하면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진다.
슈틸리케 감독은 외국인 감독 장점을 최적화시켰다. 고정관념을 철저하게 배제했다. 귀가 아닌 눈으로 선수들을 평가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3차전 레바논전(3대0 승)을 마치고 10일 귀국한 슈틸리케 감독이 쉼표없이 12일 포항-성남전이 벌어진 포항스틸야드를 찾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지난해 9월 A대표팀 감독에 선임된 그는 K리그 클래식(1부)과 챌린지(2부)를 샅샅이 누비며 '뉴페이스'를 찾고 또 찾았다.
슈틸리케 감독의 레이더에 포착된 권창훈은 지난달 동아시안컵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유럽파가 함께 한 라오스(8대0 승), 레바논과의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에서도 그는 주연이었다. 2경기에서 3골을 터트리며 슈틸리케 감독을 들뜨게했다. "기대보다 훨씬 더 잘해주고 있다. 아직 스물 한 살 젊은 선수인데 앞으로 슬럼프가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계속 믿음을 주면서 잘해줄 것을 기대하겠다." 슈틸리케 감독도 고무됐고, 단어 하나, 하나에 믿음이 한껏 묻어났다.
슈틸리케호도 변화가 감지된다. 슈틸리케 감독은 처음에는 팀의 근간인 유럽파와 함께 중동파를 주목했다. 무게의 추가 중동파에서 K리그로 쏠리고 있다. 이번 라오스-레바논의 2연전에선 중동파는 맏형이자 정신적인 지주 곽태휘(34·알 힐랄)가 유일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중동리그의 질이 K리그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도 분발을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그 통로는 지난달 동아시안컵이었다. 15명의 K리거가 주축이 된 그 무대에서 슈틸리케호는 우승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동아시안컵 후 대표팀의 골격이 완성됐다고 선언했다.
결국 태극마크는 '돈'으로 살 수 없다. K리그는 여전히 '오일머니'와 '황사머니'에 노출돼 있다. 무분별하게 돈을 쫓다보면 금세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 K리그는 최근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발표한 클럽 랭킹에서 20위 내에 가장 많은 클럽(서울·4위, 전북·7위, 포항·13위, 울산·15위)을 배출했다. 여전히 아시아 최강으로 인정받고 있다.
삶처럼 그라운드도 생물이다. 한국 축구의 화수분은 K리그다. 끈질긴 생명력은 제2, 제3의 권창훈을 기대하고 있다. 물론 누군가 또 K리그를 떠날 것이다. 다만 해외 진출에도 지혜가 필요하다. 돈도 좋지만, 명예도 돌아보길 바란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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