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호의 주전 원톱' 이정협(상주)의 신분은 대한민국 육군 병장이다. 그를 대표하는 별명도 '군인'과 '신데렐라'를 합친 '군데렐라'다. 이정협은 평소 군인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군데렐라라는 별명을 평생 잊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고 한다.
이정협은 지난달 30일 일산의 한 극장에서 A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영화 '연평해전'을 관람했다. '연평해전'은 2002년 6월 북방한계선(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대한민국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 간에 발생한 해상 전투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대한축구협회가 동아시안컵을 앞둔 대표팀의 사기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군인 신분인 이정협에게는 더 특별했다. 협회는 인터뷰 도중 같은 군인 신분으로 감정이 몰입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정협은 "운 것 까지는 아니었다"고 웃은 뒤 "2002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특별했다. 나와 비슷한 군인들의 이야기에 뭉클했다"고 설명했다.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우쳤다. 한국은 9일(이하 한국시각) 중국 우한스포츠센터에서 북한과 2015년 동아시안컵 최종전을 치른다. 이정협이 현역 군인으로 맞이하는 남북전은 어찌보면 한-일전보다도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정협도 이를 강조했다. 6일 중국 우한스포츠센터 보조경기장에서 훈련을 마친 이정협은 "주변에서 '북한에 지면 영창감이다. 절대 지면 안된다'는 말을 많이 했다"며 "나도 당연히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특별한 격려도 받았다. 여자 대표팀의 권하늘(부산 상무)이다. 역시 군팀에서 뛰는 권하늘의 계급는 중사다. 이정협의 상관이다. 이정협은 "파주에서 권 중사님에게 우한으로 출발하기 전날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 아무래도 신분이 군인이라 깍듯하게 중사님이라고 인사해야 한다. 그랬더니 이 병장도 잘 하고 오라고 했다"고 했다.
이정협이 남북전을 벼르고 있는 이유는 또 있다. 부산에서도 그저 그런 선수였던 이정협은 상주 상무 입대 후 기회를 얻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그를 주목했다. 이정협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15년 호주아시안컵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한국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정협은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의 원톱으로 자리잡았다. 자신을 발탁한 슈틸리케 감독에게 첫 트로피를 안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국이 북한을 잡을 경우 2008년 이후 7년만의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다.
이정협의 무기는 헌신이다. 군인의 덕목이기도 하다. 그는 "스트라이커로 골을 넣으면 좋지만 안될 경우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도 나의 역할이다. 김승대 이재성 이종호와 '볼을 받아줄테니 나를 믿고 공을 달라'고 끊임없이 이야기 하면서 움직인다"고 했다. 이정협은 "골욕심 보다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력 우승을 하고 싶다. 우승을 목표로 했기 때문에 북한을 반드시 넘고 싶은 생각 뿐"이라고 했다.
이정협은 이번 대회에서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0월12일 전역을 앞둔 이정협에게 남북전은 반드시 넘어야 하는 마지막 미션이다. 군인 신분으로, 여기에 첫 우승의 기회까지 주어진 남북전이 이정협에게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우한(중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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