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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아니면 도다."
지난 2000년 일본 J리그 빗셀 고베에서 전북으로 돌아왔을 때다. '선수' 김도훈은 프로 데뷔를 시작한 전북을 위해 너무 큰 복귀 선물을 안겼다.
성남 일화와의 FA컵 결승. 당시 전북은 1999년 성남과 FA컵 결승에서 만났다가 0대3으로 대패했던 터라 복수전을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성남에는 1999년 우승의 주역 신태용(현 올림픽대표팀 감독)이 있다면 전북에는 돌아온 폭격기 김도훈이 장착됐다.
이처럼 김 감독은 FA 역사에서 명승부로 기록된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주인공이다. 이제는 감독으로서 새로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22일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제주와의 FA컵 8강전을 앞둔 김 감독은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우승까지 도전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상위 스플릿에 근접한 것만으로도 대성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천이다. 고질적인 재정난으로 인해 선수들 급여가 제때 지급되지 않는 등 안팎의 열악한 상황을 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인천이 FA컵 우승까지 넘본다는 게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는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달려들고 싶은 이유가 있다.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헤쳐나가는데 작은 돌파구라도 만들어주고 싶어서다. 현재 인천 구단은 두 차례의 대표이사 공모에서 적임자를 찾지 못했다.
응급조치로 외부 전문가를 단장으로 영입해 비상체제를 가동하기로 했다. '황금 송아지'는 아니더라도 체불위기라도 해결할 수 있는 대표가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하는 인천 구단이다.
그렇다고 입만 벌리고 있어서는 안된다. 무엇으로든 인천 구단에 투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매력을 보여줘야 한다.
당장 효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게 FA컵이다. 인천이 제주를 물리치고 준결승에 진출한다면 구단 역사상 2007년 이후 8년 만의 쾌거를 이루게 된다.
때마침 제주와의 8강전이 열리는 22일은 비상체제를 총괄 책임질 신임 정의석 단장이 첫 출근하는 날이다. 김 감독은 이달 말 마감을 앞둔 여름 이적시장에서 선수보강에 대한 희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올 시즌 리그에서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기름칠'을 조금만 해주면 하반기 약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게 김 감독의 바람이다.
이런 바람에 빠르게 근접하기에 FA컵은 좋은 무대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이 지난 2000년 전북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장소가 제주였다. 김 감독에게는 제주가 '약속의 땅'인 셈이다.
"지금 형편이 어렵다고 낙담할게 아니라 뭔가 성과를 이뤄놔야 나중에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지 않겠나." 김 감독이 FA컵에서도 성공하고 싶은 또다른 이유다.
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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