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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연이 후반에 들어가서 제 역할을 했다. 지소연의 가치를 알 수 있는 경기였다."
이날 태극낭자들은 안방 축구팬들 앞에서 절실하게 뛰었다. 초반부터 한국은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90분 동안 무려 12개의 슈팅을 쏘아올렸다. 유영아, 정설빈이 잇달아 찬스를 잡았다. 전반 13분 유영아가 2선에서 찔러준 전진패스를 이어받아 슈팅을 날렸으나 불발됐다. 전반 21분 유영아에게 결정적인 찬스가 찾아왔다. 러시아 수비수의 볼을 뺏어내 단독찬스를 맞았다. 회심의 슈팅은 골대 옆으로 흘렀다. .
윤 감독은 후반 14분 '1994년생 막내 공격수' 이금민을 투입했다. 공격라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후반 28분 이금민이 단독쇄도하며 작정하고 밀어넣은 슈팅이 골대 오른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90분 내내 경기를 지배했지만, 한방이 부족했다. 윤 감독은 비장의 한수를 빼들었다. 후반 29분, 아껴둔 '최종병기' 지소연을 투입했다. 에이스의 등장에 그라운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미드필드에서 경기를 조율했고, 공간을 창출했고, 거침없이 슈팅을 날렸다. 그라운드에 선 지소연은 거짓말처럼 씩씩했다. 클래스를 입증하는 데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지소연을 만났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최상의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17년만의 A매치는 축구사에 길이 남을 일이다. 첫 A매치였던 만큼 꼭 뛰고 싶었다"고 했다. 8일 대전에서 펼쳐질 러시아와의 2차전, 진일보한 모습을 다짐했다. "오늘 이기긴 했지만, 패스 미스가 많았고, 선수들이 첫 A매치라 많이 긴장했다. 실수가 많았다. 리그만큼 보여주지 못했다. 2차전에서는 틀림없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컨디션을 묻는 질문에 "이영표 오빠를 경기전에 뵀다. 컨디션을 물어보셨다. '컨디션이 안좋다 안좋다 하면 안좋아진다, 좋다고 생각하면 좋아진다'고 조언하셨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인천아시안게임, 런던에서 갓 입국한 지소연은 4강에서 북한에게 분패한 후 눈물을 쏟았었다. "머리가 깨져도 좋다고 생각할 만큼 열심히 뛰었지만 시차 때문에 좋은 경기력을 보이지 못했다"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6개월만의 A매치, 그녀는 더 강해졌다. "아시안게임에서 스스로에게 실망이 컸다. 이후 남자대표팀 친구, 선후배들에게 시차적응에 대한 조언을 많이 구했다"고 했다.
그라운드에 들어서면서부터 골 욕심을 냈다. "욕심이 있었다. 상대가 지쳐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을 공략하겠다고 맘먹고 들어섰다"고 했다. '맘 먹으면 골을 넣는 선수, 승부를 결정짓는 선수' 지소연은 이날 러시아전에서 '왜 지메시인가'를 유감없이 증명해보였다. 최악의 컨디션에서 최고의 골을 쏘아올렸다. 한국 여자축구의 중심에는 A매치 73경기, 37호골에 빛나는 '지메시' 지소연이 있다.
인천=전영지, 이 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