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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라이벌로 몰지 마세요. 우린 연합군이에요."
14일 제주도 서귀포 칼호텔 커피숍, 노상래 전남 감독(45)과 김도훈 인천 감독(45)이 나란히 앉았다. 2월 초부터 서귀포 칼호텔엔 전남드래곤즈와 인천유나이티드의 플래카드가 나란히 걸려있다. 일찌감치 잡아둔 전훈 장소가 공교롭게 겹쳤다. 예년같으면 신경전을 벌였을 법도 한데, '동갑내기 절친' 노 감독과 김 감독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서로를 배려하며 공존하고 있었다. 전훈 기간, 전남 유스 출신 미드필더 이중권이 인천 유니폼을 입었다. 17일 연습경기 일정까지 잡았다. 라이벌, 경쟁을 언급하자 손사래부터 쳤다. "자꾸 싸움을 붙이시는데, 우리는 잘나가는 팀, 선배 감독님들에게 함께 힘을 합쳐 도전하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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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넌슈터' 노상래와 '갈색폭격기' 김도훈은 명실상부 'K리그 레전드'다. 1970년생 동갑내기 에이스는 1995년, 나란히 데뷔했다. 2015년 K리그 클래식 사령탑 데뷔도 함께하게 됐다. 특별한 인연이다. 스물다섯 축구청년이 마흔다섯 감독이 된 지난 세월은 K리그의 역사다. 지난 20년간 선수, 지도자로 클럽, 대표팀에서 경쟁하고 공존했다. .
"언론이 라이벌 구도를 만들었지만 우리 둘은 늘 잘 지냈다"며 웃었다. "전남, 전북이고 같은 포지션이고, 동갑이고, 첫해부터 임팩트가 강했으니까. 자꾸 주변에서 경쟁을 붙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표팀 초기, 동아시안컵에선 김도훈이 주전이었다. 유니버시아드대회땐 노상래가 주축이었다. 프로 무대에서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다. 노 감독이 말했다. "초반엔 내가 앞섰지만, 뒷심은 김 감독이 나았다"고 했다. 김 감독이 말했다. "노 감독이 지금도 그렇지만 워낙 묵묵한 스타일이다. 우린 라이벌이란 생각 없이 자기 일에 충실했다. 라이벌이라기보다 서로의 발전을 자극하는 존재였다"고 했다.
'동갑내기 득점왕'인 이들은 '토종 득점왕'들의 모임인 '황금발' 멤버이자, '40-40' 클럽 회원이자, 70년 개띠들의 모임 '견우회' 멤버다. '황금발' 친선경기 라인업을 묻자 웃음이 터진다. 최강의 골잡이인 이들은 나란히 포백라인에 선다. 김 감독이 오른쪽 수비수, 노 감독이 왼쪽 수비수다. "'황금발'은 수비수가 없다.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질 않는다. 10명이 다 공격만 한다. 진정한 닥공"이라며 웃었다. "견우회에선 나름 포지션이 갖춰진다. 우리는 '견우회'에서 수비를 배워서 '황금발'에서 수비한다"며 하하 웃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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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탑이 된 이들은 스승보다 나은 제자, 청출어람을 고대하고 있다. 자신들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할 준비가 돼 있다. 23세 이하 선수뿐 아니라 21세, 22세 이하 유망주들을 키워내고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2군리그 활성화에 대한 공감대도 같았다. K리그를 호령했던 토종 스트라이커들은 '황금발'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다. "'황금발' 후배들이 들어와서 수비도 좀 서고, 앞에서 빠릿빠릿 뛰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김 감독은 '군데렐라'를 떠올렸다. 이정협(상주)을 언급했다. "올해 챌린지 선수이긴 하지만, 아시안컵을 보며 넘어지면서도 골을 넣는 것, 끝까지 도전하는 부분을 높이 산다. 빠른 박자를 갖고갈 수 있는 역량에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클래식 '황금발' 후보로 이구동성 김신욱(울산)을 꼽더니, 사이좋게 양팀의 골잡이들도 추천했다. 노 감독은 "인천 진성욱은 미완의 대기다.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서포트해주면 가능성이 충만한 선수"라고 했다. 김 감독이 '광양루니' 이종호를 이야기했다. "인천아시안게임 때 파주에서 본 적이 있다. 혼자 남아서 훈련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텝에 대해 몇마디 조언했는데 받아들이는 자세가 정말 좋더라. 그런 선수라면 틀림없이 발전하게 돼 있다."
개띠 대세론과 징크스
'개띠 대세론'을 흐뭇한 미소로 긍정했다. 견우회 멤버중 조성환 제주감독까지 K리그 클래식 감독이 무려 3명이다. 정재권 한양대 감독, 최문식 올림픽대표팀 코치, 김인완 20세 이하 대표팀 코치도 개띠클럽이다. 서로의 첫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했다. 김 감독은 "전남은 내실적으로 잘 다져져 있다. 경험 있는 선수들이 많고 신구조화도 잘 돼있다. 준비가 매우 잘된 팀이다. 소리없이 강한, 뱃길에 슥 지나가는 항공모함같은 팀, 상위팀들이 만만히 봐서는 안될 팀"이라고 했다. 노 감독이 "김 감독의 성격과 색깔을 누구보다 잘안다. 팀 성향도 비슷하게, 폭발적인 파워를 갖춘 '폭격기'처럼 무서운 팀이 될 것이다. 경험도 많고, 질기고 끈끈한 팀"이라고 했다.
라이벌이 아니라고 손사래쳤지만 사실 전남의 인천 징크스는 악명 높다. 14무6패, 20경기 무승을 이야기하자, 분위기가 팽팽해졌다. 노 감독이 "부담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기부여도 된다"고 했다. "두번 다시 그 말(20경기 무승)이 나오지 않게 하겠다"는 선전포고에 김 감독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맞은 사람은 기억해도 때린 사람은 기억을 못한다. 우린 현상만 유지하면 된다."
마무리는 훈훈했다. 서로를 향한 덕담이었다. 노 감독이 은퇴할 때까지 매년 10골 이상을 터뜨린 '동기' 김 감독에게 말했다. "올시즌 첫 도전이지만, 선수때처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수때 그랬던 것처럼, 오래오래 길고 강하게 살아남아라!" 김 감독이 신인왕 출신 득점왕 노 감독에게 화답했다. "노 감독은 늘 꾸준했다. 인품적으로도 꾸준하고 안정된 사람이다. 그런 부분이 선수들에게 잘 전달될 것이다. 내친 김에 친구야, 우승해라! 첫해에 사고 잘치잖아, 사고 한번 쳐라!"
제주=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