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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웃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나가면서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수고했다"는 격려는 잊지 않았다. 김기희(27·전북)가 '짧은 머리' 하나로 전북 동계 훈련의 스타가 됐다.
군대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만 해온 김기희였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하다 온 동기들의 이야기가 신기했다. 김기희는 "그동안 내가 축구만 해온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느꼈다. 퇴소하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 입소했을 때 김기희는 동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 식스팩이 선명한 복근, 곳곳에 있는 부상 흉터, 약간은 험상궂은 인상 때문이었다. 사흘이 지났을 즈음 정체가 드러났다. 신상카드를 확인한 조교가 깜짝 놀라며 물어봤단다. "진짜 축구 선수 김기희에요?"라고. 그 때부터 동기들과 조교들, 간부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며칠 후 A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고 있는 사진이 하나 도착했다.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알고 보니 훈련소의 전통이었다. 훈련받은 유명인들 모두 사진에 사인을 해서 로비에 걸어놓고 있었다. 김기희의 사진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3·텍사스) 옆에 걸렸다.
4주간의 훈련 기간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2015년 시즌에 대한 다짐이 가장 많았다. 전북은 K리그 2연패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목표로 세웠다. 수비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조교들을 통해 영입 소식도 들었다. 불침번이나 훈련 대기 시간동안 "경쟁자가 많아진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김기희는 아직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나머지 런던 멤버들에게도 한 마디를 남겼다. 20명의 선수들 가운데 김기희를 포함해 5명 정도만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선구자적인 입장에서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메시지를 전했다. "다른 런던 동료들이 전화 오더니 훈련소 생활에 대해 많이 묻더라.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그냥 가봐라. 그럼 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