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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빡빡 머리' 김기희 "군대가서 많은 것 배웠어요"

이건 기자

기사입력 2015-01-08 06:15


머리를 짧게 자르고 훈련하는 김기희. 사진제공=전북현대

다들 웃었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 지나가면서 머리를 툭툭 쳤다. 그러면서도 "수고했다"는 격려는 잊지 않았다. 김기희(27·전북)가 '짧은 머리' 하나로 전북 동계 훈련의 스타가 됐다.

김기희가 짧은 머리로 나타난 것은 남다른 휴가 기간 때문이다. K리그가 끝나기 전인 11월 24일 부산 53사단 신병교육대에 입소했다. 김기희는 2012년 런던올림픽 남자 축구에서 동메달 신화에 일조했다. 일본과의 동메달결정전에서 2-0으로 앞선 후반 추가 시간에 투입됐다. 4분간 그라운드를 누볐다. 동메달을 따고 병역 특례를 받았다.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만 받으면 군복무를 면제 받게 됐다. '4분 전역'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군사 훈련을 앞두고 고민도 있었다. 아시안컵 때문이었다. 김기희는 유력한 승선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도 받았다. 10월 10일 파라과이전에서 선발로 나서 89분을 뛰었다. 2대0 승리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행정 절차상 군사 훈련을 피할 수 없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김기희가 군사훈련을 소화한 후 정상 컨디션을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아시안컵 명단에서 제외했다. 김기희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이 기회에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가짐으로 군사 훈련에 임했다.

군대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만 해온 김기희였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일하다 온 동기들의 이야기가 신기했다. 김기희는 "그동안 내가 축구만 해온 우물안 개구리라는 것을 느꼈다. 퇴소하면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처음 입소했을 때 김기희는 동기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 검게 그을린 얼굴, 식스팩이 선명한 복근, 곳곳에 있는 부상 흉터, 약간은 험상궂은 인상 때문이었다. 사흘이 지났을 즈음 정체가 드러났다. 신상카드를 확인한 조교가 깜짝 놀라며 물어봤단다. "진짜 축구 선수 김기희에요?"라고. 그 때부터 동기들과 조교들, 간부들의 질문 공세가 쏟아졌다. 며칠 후 A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고 있는 사진이 하나 도착했다. 사인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알고 보니 훈련소의 전통이었다. 훈련받은 유명인들 모두 사진에 사인을 해서 로비에 걸어놓고 있었다. 김기희의 사진은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는 추신수(33·텍사스) 옆에 걸렸다.

4주간의 훈련 기간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특히 2015년 시즌에 대한 다짐이 가장 많았다. 전북은 K리그 2연패와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목표로 세웠다. 수비수들을 대거 영입했다. 조교들을 통해 영입 소식도 들었다. 불침번이나 훈련 대기 시간동안 "경쟁자가 많아진다.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12월 19일 퇴소했다. 휴식을 가진 뒤 5일 클럽하우스로 복귀했다. 선배들이 환영의 인사를 보냈다. 이동국(36)은 "고생했다. 좀 큰 것 같네"라며 격려했다. 김상식 코치(39)는 "네가 군대를 알어? 4주만에 전역했으면서"라고 농담을 던졌다. 그래도 "짬밥이 좋았나 보네. 이제 운동 열심히 하자"고 얘기했다. 예비역인 최철순(28) 권순태(31) 등과도 군대 이야기로 웃음꽃을 피웠다. 김기희는 "올림픽 동메달로 군대에 4주만 다녀왔다.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다. 그만큼 전북에서 더욱 열심히 하겠다. 한국 축구에 보탬이 되는 선수로 거듭나고 싶다. 예비역 형들도 다들 '좋은 모습 보이는 것이 병역 혜택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하더라"고 했다.

김기희는 아직 군사 훈련을 받지 않은 나머지 런던 멤버들에게도 한 마디를 남겼다. 20명의 선수들 가운데 김기희를 포함해 5명 정도만 군사 훈련을 받았다. 선구자적인 입장에서 익살스러운 웃음과 함께 메시지를 전했다. "다른 런던 동료들이 전화 오더니 훈련소 생활에 대해 많이 묻더라. 다른 말은 하지 않겠다. 그냥 가봐라. 그럼 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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