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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널 9번의 저주가 다시 발동됐다. 루카스 포돌스키(30·독일)가 발목이 잡혔다.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밀란은 3일(한국시각)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포돌스키의 도착을 발표했다. 인터밀란 임대가 사실상 확정됐다. 포돌스키는 두 시즌 반동안의 아스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다음 희생양은 2001~2001시즌 9번 프란시스 제퍼슨(잉글랜드)이었다. 당시 제퍼슨은 에버턴 유스 시스템이 만들어낸 최고의 축구 천재였다. 17살에 프로에 데뷔했다. 아스널에 오기 전 4시즌동안 60경기에서 20골을 넣었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아스널은 20세의 제퍼슨을 데려오기 위해 에버턴에 157억원의 이적료를 지불했다. 당시만 해도 상당한 금액이었다. 하지만 아스널에서 무너졌다. 2시즌동안 38경기에 나왔지만 8골을 넣는데 그쳤다. 2003~2004시즌 에버턴으로 재임대됐다. 이후 찰튼과 레인저스를 거쳤다. 결국 하부리그와 호주 리그를 전전하다 은퇴했다.
2003~2004시즌부터 2005~2006시즌까지 9번 호세 안토니오 레예스(스페인)는 평범했다. 잉글랜드 생활 내내 향수병에 시달렸다. 3시즌 동안 23골을 넣었다. 2005~2006시즌이 끝난 뒤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2007~2008시즌 9번은 에두아르두(크로아티아)였다. 아스널 9번 역사상 가장 불운했다. 아스널로 오기 전 6시즌동안 166경기에서 104골을 넣었다. 시즌당 17골을 넣었다. 2007~2008시즌 에드아르두는 31경기에서 12골을 넣었다.
9번의 저주는 힘을 못쓰는 듯 했다. 다음 시즌 불운이 찾아왔다. 2008년 2월 23일 버밍엄과의 경기에서 크게 다쳤다. 버밍엄의 마틴 테일러가 에두아르두의 왼쪽 정강이에 거친 태클을 했다. 정강이는 부러졌다. 1년간 병원 신세를 졌다. 2009년 2월 16일 복귀했다. 예전 기량이 아니었다. 부상 복귀 후 28경기에 나섰지만 5골을 넣는데 그쳤다. 2009~2010시즌이 끝난 뒤 샤흐타르 도네츠크(우크라이나)로 떠났다.
2010~2011시즌에는 9번이 없었다. 2011~2012시즌 새로운 9번이 나왔다. 박주영이었다. FC서울과 AS모나코에서 기량을 인정받았다. 당초 박주영의 행선지는 릴(프랑스)이었다. 아스널이 중간에 가로챘다. 박주영은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했다. 로빈 판 페르시,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린, 제르비뉴, 니클라스 벤트너에게 밀렸다. 1시즌 동안 6경기에 나서 1골을 넣는데 그쳤다. 이후 셀타비고, 왓포드 임대를 전전했다.
박주영에 이어 9번을 단 이가 바로 포돌스키다. 포돌스키는 독일의 스타였다. 독일에서 10시즌동안 291경기에 나서 112골을 넣었다. 아스널에서 첫 시즌은 좋았다. 2012~2013시즌 42경기에 나와 16골을 넣었다. 포돌스키는 "내 몸에 아스널 문신을 새기겠다. 너무 자랑스럽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곧바로 9번의 저주가 시작됐다. 2013~2014시즌 초반부터 부상에 시달렸다. 결국 27경기에서 12골에 그쳤다. 올 시즌 들어 벵거 감독의 눈 밖에 났다. 기회를 제대로 얻지 못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7경기 교체 출전에 그쳤다. 출전 시간은 99분에 불과하다. 유럽챔피언스리그(UCL) 5경기에 나왔다. 선발 출전은 1번에 그쳤다. 총 12경기 출전 3골을 기록했다. 포돌스키는 폭발했다. 벵거 감독에게 "출전 시간을 보장하라. 그렇지 않으면 다른 팀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벵거 감독은 포돌스키를 인터밀란으로 보냈다. 결국 9번의 저주를 넘지 못했다.
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