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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골키퍼 육성의 출발은 아이러니하게도 '규제'였다.
'숙적' 일본도 비슷한 고민을 한 적이 있다.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올랐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 공격수 부재를 절감하면서 조별리그 탈락의 쓴잔을 마셨다. 당시 일본이 내세울 만한 국내파 정통 스트라이커는 미우라 가즈요시, 나카야마 마사시 둘 뿐이었다. J-리그 대부분의 팀들이 1993년 리그 출범 뒤 게리 리네커(잉글랜드), 지코, 알신도(이상 브라질), 흐리스토 스토이치코프(불가리아), 패트릭 음보마(카메룬) 등 외국인 공격수들을 집중적으로 영입한 결과였다.
이들이 찾은 해답은 '육성'이었다. 일본축구협회(JFA) 주도 하에 '권역별 스트라이커 육성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승패를 떠나 발전이 곧 생존이라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전국 47개 도도부현 축구협회에서 유망주를 선별한 뒤, JFA가 육성을 지원했다.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체격, 기량 등을 세밀하게 평가한 뒤 성장을 후원했다. 프로팀에서도 협회와의 공조 하에 유스 시스템을 활용한 선수 발굴, 유학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수행했다. 이 결과 일본은 히라야마 소타, 모리모토 다카유키, 사토 히사토, 오카자키 신지, 도요다 요헤이, 가키타니 요이치로, 스즈키 무사시, 하프나 마이크 등을 발굴하면서 스트라이커 부재를 어느 정도 해소했다. 여전히 '대형 공격수'에 목말라 하고 있으나, 더 이상 '뽑을 만한 공격수가 없다'는 한탄은 나오지 않고 있다. 현재도 일본의 스트라이커 육성 프로그램은 꾸준히 진행이 되면서 우수 인재 발굴의 근간이 되고 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