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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갔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밀집모자에 사냥총을 들었다. 총구는 '독수리'를 겨냥했다. 최용수 서울 감독이었다. '독수리'의 반응이 재치만점이었다. "그런데 최강희 감독님 총은 연발이 안된다. 한 발만 쏠 수 있는 구식이더라. 심장만 관통되지 않는다면 계속 맞붙을 수 있다. 나는 방탄복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 있으면 된다." 전북은 안방에서 서울의 윤일록에게 '버저비터 골'을 허용하며 1대2로 무릎을 꿇었다.
승부의 세계에 영원한 것은 없었다. 이번에는 최강희 감독의 세상이었다. 서울 안방에서 '전북 극장'이 연출됐다. 경기는 득점없이 무승부로 끝날 것 같았다. 인저리타임 3분이 주어졌다. 2분이 흘렀다. 전북이 마지막 공격을 펼쳤다. 이승기의 왼쪽 크로스가 레오나르도의 머리를 거쳐 이재성의 발끝에 걸렸다. 이재성은 침착하게 카이오에게 연결했고, 카이오가 왼발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전북이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2014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스플릿 그룹A 1라운에서 FC서울을 1대0으로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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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드 마크인 '닥공(닥치고 공격)'이 사라졌다. 최강희 감독은 "서울은 우리랑 하면 안지려고 하고, 우리는 이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말리면서 해결을 못했다"고 했다. 전북의 첫 스리백은 견고했다. 더블볼란치에 김남일과 신형민이 포진하면서 볼 샐 틈이 없었다. 서울은 시즌 초부터 스리백을 가동했다. 스리백과 스리백의 만남, 경고가 무려 7개가 나올 만큼 거칠었다. 후반 5분에는 오스마르와 김남일이 충돌하면서 난투극 직전까지 갔다.
최강희 감독은 그 틀을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마지막 역습에서 서울을 요리했다. 최강희 감독은 의기양야했다. "0대0으로 비기려고 경기를 준비했다. 전북 팬에게는 죄송하지만 서울전은 이기려고 준비하면 계속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전술적으로 3일동안 서울 맞춤형 전술을 준비했다. 앞으로는 서울하고 경기가 이렇게 계속 진행될 것 같다." 그리고 최용수 감독에게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그는 "우리도 충분히 이런 경기를 할 수 있다. 서울이라는 팀이 오늘 같이 홈인데도 적극적이지 않으면 결국은 전체적으로 경기가 느슨해질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승점 71점을 기록한 전북은 우승매직 넘버를 1로 줄였다. 최강희 감독은 "선수들한테 계속 1위팀 다운 모습을 보이자, 우승 결정이 날때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주문을 했다. 다음 경기가 되든, 홈경기든 남은 경기들을 꼭 좋은 모습으로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 선수들을 믿고 계속 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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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감독은 전북의 진용을 보고 놀랐다. "최강희 감독님 왜 이러시지. 갑자기 10백을…."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북과 올시즌 마지막 경기라 시원섭섭하다. 전북과는 1~2번 더 하고 싶다"며 "전북전은 준비 과정부터 끝나고 나서도 늘 재밌었다"고 했다. 덕담도 잊지 않았다. "전북은 K-리그에서 존중받을 팀이다. 2~3차례 고비를 잘 헤쳐나갔다. 1위하는 이유가 다 있다."
서울은 부상한 김주영 대신 차두리를 스리백에 포진시킨 것외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에벨톤-에스쿠데로-몰리나를 함께 출동시켰다. 하지만 전북의 강력한 압박과 수비라인의 수적 우세에 탈출구를 마련하지 못했다. 전방에서의 세밀함도 떨어졌다. '전북 킬러' 윤일록이 복귀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이후 첫 출격이었다. 후반 34분 교체로 나섰다. 선발 출전했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다. 결국 변화에 인색했다. '옛 것'에 몰두하다보니 승점도 챙기지 못하고 몰리나도 잃었다. 몰리나는 후반 34분 부상으로 아웃됐다. 올시즌을 접을 가능성이 높다.
승점 50점에 머무르며 5위로 떨어졌다. 최용수 감독은 "전반에 선수들이 당황한 것 같다. 나도 당황스러웠다"며 "후반들어 우리 페이스로 흘렀는데 상대가 한 두번 역습을 노리지 않을까 했다. 결국 역습에서 실점을 했다. 다음 주에 슈퍼매치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면 FA컵 결승에서도 좋지 않은 분위기로 가기 때문에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했다.
상암=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