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AG]'버저비터' 남북 축구 드라마, 영웅은 대한민국이었다

김성원 기자

기사입력 2014-10-02 22:45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김신욱이 2일 인천문학축구장에서 열린 2014인천아시안게임 축구결승전에서 북한을 상대로 승리하고 환호하고 있다.
인천=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4.10.02/

36년 만의 남북 결승 대결은 갱없는 극적인 드라마였다.

남과 북은 1978년 방콕 대회 결승전에서 맞닥뜨렸다. 득점없이 비기며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더 이상 공동우승은 없었다.

날씨처럼 그라운드는 변덕이었다. 오락가락한 비는 후반 15분 다시 내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답답했던 그라운드는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태극전사들이 세차게 몰아치는가 싶더니 북한이 응수했다. 후반 28분 박광룡의 헤딩이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관중석이 출렁였다.

90분이 흘렀지만 골망은 흔들리지 않았다. 연장전에 돌입했다. 연장 전후반 30분이었다.

하지만 지긋지긋하게도 골망은 열리지 않았다. 연장 후반 3분 '비빌병기' 김신욱(26·울산)이 투입됐다. 파상공세가 펼쳐졌지만 골운은 없었다. 경기장 대형스크린의 시간은 마침내 연장 후반 15분을 가리켰다. 그순간 거짓말처럼 골망이 흔들렸다. 북한의 골문이었다. 문전 혼전 상황에서 임창우(22·대전)의 오른발 슈팅이 골라인을 통과했다.

4만7120명이 운집한 인천 문학경기장이 "대~한민국"으로 메아리쳤다. 이광종호가 마침내 꿈을 이뤘다. 28년 만의 꼬인 매듭을 풀었다.

대한민국이 2일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벌어진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북한을 1대0으로 제압했다. 한국은 1970년(방콕)과 1978년(방콕) 대회에서 공동 우승했다. 1986년(서울)에는 사상 첫 단독우승의 환희를 일궈냈다. 그러나 이후에는 단 한번도 결승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다. 1990년 베이징(3위), 1994년 히로시마(4위), 2002년 부산(3위), 2006년 도하(4위), 2010년 광저우(3위) 대회에선 4강에서 멈췄다. 1998년 방콕에선 8강에서 발걸음을 돌렸다. 돌고, 돌아 인천에서 화려한 마침표를 찍었다. 28년 만의 환희였다. 금자탑은 또 있었다. 4차례 아시안게임을 제패한 한국 축구는 최다 우승팀인 이란(4회)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북한에도 삼세판 만에 깔끔하게 설욕했다. 16세 이하 대표팀은 아시아선수권 결승전에서 북한과 충돌했다. 지난 29일에는 인천아시안게임 여자 축구에서 남북 4강 대결이 열렸다. 두 차례 모두 1대2로 역전패했다. 이광종호가 아우와 누이의 눈물을 깨끗이 닦아줬다. 북한이 아시안게임 결승에 오른 것은 1990년 베이징 대회(준우승) 이후 24년 만이었다. 우승은 1978년이 마지막이었다. 36년 만의 꿈은 대한민국에 가로막혔다.


정상의 길은 험난했다. 손흥민(22·레버쿠젠)의 차출 실패가 신호탄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선 두 명의 주축 공격수를 잃었다. 김신욱(26·울산)과 윤일록(22·서울)이 부상했다.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는 곁을 떠나지 않았다.

태극전사들도 느꼈고, 스스로도 인정했다. 와일드카드(24세 이상 선수) 김신욱 박주호(27·마인츠) 김승규(24·울산)는 물론 어린 선수 가운데도 튀는 선수가 없었다. '희생'과 '솔선수범'으로 똘똥 뭉쳤다. 소통을 하며 탈출구를 찾았다. 선수단 전체 '전략회의'와 포지션별 미팅을 통해 한 단계, 한 단계 조직력을 끌어올렸다. 전원이 귀도 열었다. 주장 장현수(23·광저우 부리)가 중심이었다. 위와 아래, 구분이 없었다. 나이의 벽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개인의 장점도 숨김이 전수하며 짧은 시간에 '원팀'이 됐다.

'병역의 덫'에 걸리지 않기 위해 '군대'에 대한 이야기도 일절없었다. 모두가 마음을 비웠고, 마침내 아시아 정상에 섰다. 2002년 부산 대회부터 23세 이하로 연령 제한이 생긴 후 3장의 와일드카드가 동시에 도입됐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와일드카드 삼총사는 '잔혹사'를 마감하며 또 하나의 이정표를 세웠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 이광종호에는 '우리'만 있을 뿐 '나'는 없었다. 28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비결이다. 그들의 투혼은 눈부시도록 빛이 났다.
인천=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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