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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전]역사 쓴 이동국, 16년 태극전사 스토리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09-05 18:58



'라이언킹' 이동국(37·전북)이 한국축구사에 또 하나의 족적을 남겼다.

이동국은 5일 경기도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와의 평가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이날 경기 전까지 99차례 A매치에 출전했던 이동국은 마지막 한 고개를 넘으면서 센추리클럽(A매치 100회 이상 출전자들의 모임)에 가입했다. 지난 1998년 5월 16일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자메이카와의 친선경기에서 A대표팀에 데뷔한 이래 5957일, 만 16년3개월20일 만에 이룬 대업이다.


굴곡 많은 태극마크다. 데뷔 당시 아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각광을 받았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0-5로 끌려가던 후반전 호쾌한 오른발슛으로 세계의 눈을 단숨에 사로 잡았다. 그러나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와 함께 하지 못했다.




군 입대 후 절치부심하면서 2006년 독일월드컵을 준비했지만, 본선 직전 불의의 부상으로 눈물을 흘렸다. 2007년 아시안컵 대회 기간 중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숙소를 무단이탈, 음주한 사실이 밝혀져 대표선수 자격 1년 정지의 징계를 받기도 했다.


자숙기간을 거쳐 복귀한 대표팀에서 명불허전의 기량을 펼쳐 보이며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출전의 꿈을 이뤘다. 그러나 우루과이와의 16강전까지 4경기 중 단 2경기 출전에 그쳤다. "내가 상상했던 월드컵은 이런 게 아니었다"는 말은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30줄을 넘어서도 바람잘 날이 없었다.


2011년 10월 다시 태극마크를 달면서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에 나섰으나, 부진으로 비난의 화살을 한몸에 받아야 했다. 결국 본선행에 공헌했음에도 정작 본선 무대에는 서지 못하면서 또 다시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동국은 스트라이커로는 불혹을 넘긴 37세의 나이에도 K-리그 클래식 득점랭킹 선두를 달리면서 무력시위를 했다. 홍명보 감독 사퇴 뒤 이어진 스트라이커 부재에 이동국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또 한 번의 도전이 시작됐다.


이동국은 센추리클럽 가입에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동국은 지난 1일 A대표팀 소집 당시 "매번 대표팀에 합류하면 설레이고 기분좋다"며 "이번 경기가 100번째 경기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다. 지난 99번과 마찬가지로 한경기다. 운동장에서 좋은 모습 보이겠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까지 오래할지 몰랐다. 오래하다보니 이런 날도 왔다. 앞으로 경기를 생각하면서 지난 시간을 되새겨볼 수 있는 시간 갖겠다"고 했다. 이동국은 대표팀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다. "현역 은퇴까지 대표팀 은퇴는 없다"고 했다. 이동국은 이에 대해 "말그대로 은퇴하는 순간까지 대표팀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실력 안되면 대표 못오니까 긴장하면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젊은 공격수의 부재에 대해서는 "좋은 선수들이 한국축구를 위해 많이 나와야 한다. 스트라이커라는 자리를 외면하고 다른 포지션으로 이동하는 자체가 아쉽다. 스트라이커로 꾸준히 득점을 올리고 비난을 감수하는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한이 서린 태극마크, 그 정점에 올랐다. 그라운드를 달리는 이동국의 눈은 '킬러 본능'으로 번뜩이고 있다.
부천=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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