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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스페인, '시간'이 필요해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4-09-05 11:07



브라질월드컵 조별 예선 탈락. 충격을 추슬러 다시 모였다. 하지만 내용도, 결과도 아쉬움이 남긴 마찬가지였다. 스페인이 5일 새벽(한국시각)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데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평가전에서 로익 레미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1-0으로 패했다.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른 상대와 비교했을 때, 아무래도 선수 구성 면에서 과도기적인 모습이 많았다. 폭삭 주저앉은 팀을 재건하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도 시간이 절실해 보였다.

짧은 패스로 풀어 나오려는 흔적은 있었다. 삼각 대형을 여럿 구성해 원터치로 잇는 패스는 프랑스의 허리를 빠르게 통과했다(하단 캡쳐 참고). 다만 황금기를 구가했던 몇몇 선수의 공백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티키타카'의 강점 중 하나는 흐름을 내주지 않는 것. 볼 점유율과 주도권을 움켜쥐며 상대가 흥 돋울 틈조차 주지 않는 숨 막히고도 잔인한 축구가 곧 스페인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전반적인 볼 회전율이나 속도는 예전에 비해 한참 떨어졌다. 꽉 조였던 수도꼭지가 새기 시작하자, 물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그들이 종종 물리는 일까지 발생한다.


메이저 대회를 3회 연속(2008 유로, 2010 월드컵, 2012 유로) 점령한 포스는 최전방 자원의 부진과 함께 꺾여 왔다. 디에고 코스타를 한 배에 태워 브라질로 향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주 무기로 삼았던 패스 축구가 상당히 애매해진 것. 패스의 평균 거리가 상대적으로 멀어졌고, 그 와중에 볼을 띄우는 빈도가 늘었다. 조금 더 빠르게 상대를 공략할 방법일 수는 있어도 부정확성까지 상쇄하지는 못했다. 특히 스페인이 보유한 자원의 면면을 따졌을 때 공격 루트가 코스타에게 쏠릴 가능성이 무척 컸고, 이는 지난 월드컵을 통해서도 처절하게 드러난 바 있다.

코스타는 '첼시의 구세주'였지, '스페인의 구세주'는 아니었다. 2선과의 거리가 꾸준히 유지되지 못하자, 또 다시 침묵했다. 4-2-3-1 중 2선에 세 명을 둔 소속팀에서는 거리를 유지하며 보좌를 받을 수 있었다. 더욱이 동료 선수 개개인이 상대 수비수의 견제를 분담하는 장면도 많았다. 이러한 차이는 결국 코스타 본인이 팀에 녹아든 정도로 직결된다. 공격 전개의 과정에서 선을 하나 더 그리는 식의 포스트 플레이는 이뤄지지 않았고, 동료가 없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앞선에서 줄곧 고립된 이 선수는 대표팀 소집의 보람을 찾지 못하고 67분 만에 교체 아웃됐다.

더 큰 문제는 스페인이 볼을 빼앗긴 형태가 지독히도 좋지 않았다는 데 있다(하단 캡쳐 참고). 과거와 비교해 중앙선 언저리에서 패스웍이 끊긴 정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어설픈 종패스가 끊겼을 때 그 사후 대처는 사뭇 심각해지며, 지난 월드컵에서처럼 빠른 템포로 뒷공간을 얻어맞을 확률 역시 증가했다. 프랑스는 중원에서의 볼 점유를 슬쩍 포기한 대신, 포그바가 순간적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등 기다렸다가 맞받아치는 공격을 여러 번 시도했다. 볼을 끊어낸 뒤 공격을 시작하는 첫 패스, 역습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위치가 완벽하지 못했던 것이 스페인으로선 그나마 다행이었다.

조금씩 달라진 건 실바의 교체 투입 직후다. 드리블을 치고, 패스를 뿌리고, 다시 움직이며 볼을 받는 움직임이 살아나면서 코스타 쪽으로 몰린 패스고 다채로워졌다. 중앙선 넘어 1~20m를 전진하는 데 그쳤던 스페인은 30m 이상까지도 수월하게 올라간다. 다만 페널티박스 안으로 진입하는 방법은 여전히 고민이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 줄 알고, 뛰어난 연계 능력을 지니면서도 본인이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공격수만 있다면 훨씬 더 좋아질 문제지만, 당장은 찾아 보기 어려운 게 현실. 이 부분이 해결되어야만 팀 재건도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티키타카 종말론'으로까지 단정 짓기는 어렵다. 상대 골문으로 볼을 보내는 데엔 반드시 패스가 필요하고, 이 방식을 연구하는 차원에서 지금과 유사한 스타일이 진화,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너도나도 티키타카를 주창하며 흉내 냈지만, 이를 제 것으로 소화해 이식하지 못한 팀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보유한 자원에 따라 가장 잘할 수 있는 축구로 생존법을 찾는 것이 정답일 터. 스페인식 축구가 기존의 스타일에서 파격적으로 변하지 않으리란 추측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하다못해 부러진 뼈도 완전히 붙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린다. 하물며 무너진 팀을 다시 최상위권으로 끌어 올리는 건 오죽할까. 선수들 대부분이 유럽 리그에서 뛰며 주어진 소집 시기를 알뜰하게 활용한다고는 해도, 1년에 몇 번 못 보는 대표팀의 성격을 무시하기는 어렵다. 언제쯤 구겨진 명예를 빳빳하게 펼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로 2016의 예고편이 더 흥미로워졌다.


프랑스(1) : 레미(73')

요리스(GK) / 에브라(디그네,67')-사코-바란-드뷔시 / 마투이디(카바예,67')-포그바 / 그리즈만(레미,58')-발부에나(카벨라,75')-시소코(슈나이덜린,78') / 벤제마

스페인(0) : X

데 헤아(GK) / 아스필리쿠에타-라모스-산 호세-카르바할 / 파브레가스(페드로,67')-부스케츠(이투라스페,H.T)-코케 / 카솔라(이스코,78')-코스타(알카세르,67')-가르시아(실바,58')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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