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두권 도약을 노리고 있는 수원과 제주의 K리그 클래식 2014 20라운드 경기가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다. 수원 김은선이 전반 선취골을 터뜨리며 환호하고 있다. 수원은 9승 5무 5패(승점 32점)으로 3위를 달리고 있고 제주는 8승 7무 4패(승점 31점)으로 4위를 달리고 있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14.08.10/
올 시즌 시작 전 수원은 허리띠를 졸라맸다. 모기업이 지원금을 줄였다. 예전처럼 선수들을 마구잡이로 영입할 수 없었다. 신중한 선택을 해야만 했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김은선이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수원은 광주에 있던 김은선을 데려왔다.
8개월이 지났다. 김은선의 영입은 100점 만점에 120점을 줄만했다. 김은선은 수원 이적 첫 해부터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를 차지했다.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1경기를 제외한 20경기에 출전했다. 그 중 18경기가 선발이었다. 누구보다도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그라운드를 누볐다. 순도높은 골도 기록했다. 올 시즌 넣은 3골 모두 팀 승리를 이끄는 결승골이었다. 서정원 감독도 김은선에게 믿음을 주었다. 주장 염기훈과 부주장 오장은이 동반 부상했을 때 김은선에게 주장 완장을 맡겼다. 서 감독이 선발 명단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는 김은선. 그를 만났다.
"저는 철저하게 무명이었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무명'이야기를 꺼냈다. 경력을 살펴봤다. 만수초-만수중-동대부고-대구대를 나왔다.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갔다온 연령별 대표 경력도 거의 없다. 초등학교때와 중학교 때 한번씩, 두번 뽑혔다가 조기 탈락한 것이 전부였다. 이유를 물었다. 만수중 2학년 말부터 동대부속고 2학년 초반까지 약 3년간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단다. 김은선은 "키가 좀처럼 자라지 않았다. 고등하교 1학년 말까지 1m64에 불과했는데, 집안 사정도 좋지 않았다. 자신감이 바닥이었다"고 회상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슬럼프에서 벗어났다. 키가 갑자기 자라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때 1m82까지 자랐다. 몸에 힘도 붙었다. 동대부고 김학철 감독의 권유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위치를 바꾸었다. 평소에도 상대팀의 볼을 뺏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김은선에게 딱 맞는 자리였다. 김은선은 "김남일, 가투소, 이 호 등 수비형 미드필더들이 각광을 받던 시기였다. 내 성격에도 딱 맞는 포지션 변경이었다"고 설명했다.
대구대를 졸업한 김은선은 2011년 광주 창단 멤버로 프로에 데뷔했다. 3시즌 동안 88경기에 나서 15골-4도움을 기록했다. 김은선의 능력을 눈여겨본 서 감독이 영입을 제안했다. 김은선 역시 흔쾌히 이적을 결정했다 ."수원에서 제안이 왔다고 들었을 때 너무 기뻤다. 수원 코칭스태프들의 전화에 밤잠도 못잤다"고 말한 김은선은 "어릴 때부터 수원에서 뛰고 싶었다. 마음속 0순위 팀이었다. 오고나니 매일 놀라움의 연속이다. 시설은 물론이고, 내가 함께 뛰는 선수들 그리고 열광적인 서포터들까지. 내가 열심히 뛰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은선(왼쪽)과 동생 김은수. 사진제공=광주FC
김은선에게는 '수원' 외에도 뛰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한살 터울 남동생(김은수)이다. 동생 은수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다소 재능이 부족했다. 때문에 김은선은 상급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동생과 함께 들어가는 조건을 내걸었다. 동생과 함께 있으려면 자신이 더욱 잘해야만 했다. 김은선 형제는 초중고대학교를 모두 같이 다녔다. 김은선은 "축구때문에 동생과 헤어지면 더욱 멀어질까봐 신경을 많이 썼다. 많은 분들이 배려해주어서 함께 운동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현재 동생은 대학교 졸업 후 지도자로 변신, 대구 청구고 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현역생활을 지속할 수 없다. 김은선은 "동생이 이제 현역 생활을 못하는만큼 내가 더 뛰어야 한다. 내 한 걸음은 나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내 동생 그리고 가족과 함께 하는 걸음이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훈련을 게을리 할 수 없다"고 했다. 화성=이 건 기자 bbadagu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