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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을 더 전북답게 하는 '신형민의 품격'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4-08-12 09:50



"지금 1등은 안 가는 것이 좋다"던 최강희 감독의 말이 무색했다. 9일 저녁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4 현대오일뱅크 K리그클래식 20라운드에서 나선 전북은 성남에 0-3 완승을 거뒀다. 월드컵 휴식기 이후의 성적이 6승 2무. 경기당 1.25골(12경기 15득점)에 그친 평균 득점력은 2.625골(8경기 21득점)까지 치솟았다. '닥공(닥치고 공격)'의 재현에 포항의 선두 자리까지 빼앗은 지금, 리그 우승 트로피를 재탈환하겠다는 꿈도 허황된 일은 아니다.

전북을 1위로 키운 건 8할이 측면이었다. 최 감독은 지난 겨울에도 한교원, 김인성, 이상협, 이승렬 등을 영입하며 윙어 수집에 열을 올렸다. 실제 공격 루트의 상당 부분 역시 옆줄 가까운 지역으로 광활하게 퍼져 있다. 전력 차를 인정하고 내려앉은 상대는 측면에서부터 수비 조직을 해체해 빈틈을 찾았다. 정면 승부에 나선 상대는 치고받는 양상으로 끌고 가 뒷공간을 파괴했다. 운동장에 내보낸 측면 자원이 상대 수비보다 앞설 수 있다는 자신감은 팀이 추구하는 색깔과도 엮여 있었다.

윙어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수비형 미드필더에 들인 공 역시 만만치 않다. 2013년 초 정혁을 데려온 전북은 올해 초 김남일을 불러들였고, 반년 뒤에는 신형민까지 품었다. 이승기, 이재성, 최보경 등 해당 위치를 소화해낼 자원이 여럿 있었기에 과도한 선수층 팽창으로 비칠 법도 했으나, 전북은 투자에 여념이 없었다. 6개월만 뛴 뒤 입대하려던 신형민(86년생)은 미드필더진에 드리운 부상 먹구름을 말끔히 걷어냈고, 최근에는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로도 언급되고 있다.


윙어와 수비형 미드필더. 별개의 영역처럼 비치는 두 포지션의 관계는 상당히 밀접하다. 정상적인 공격 의지를 지닌 팀이 상대 진영에서 지공을 펼칠 때, 중앙선 언저리에 남겨 놓는 수비 숫자는 보통 '3명 내외'. 포백을 가정했을 때 좌우 측면 수비 중 한 명만 오버래핑에 가담하거나, 수비형 미드필더가 뒷공간을 커버한 뒤 좌우 측면 수비가 모두 전진하는 식이다. 전북의 경우엔 신형민이 최보경-윌킨슨 중앙 수비 사이로 내려왔고, 좌 이주용-우 이규로가 신나게 내달렸다(상단 캡처 참고). 전반 33분, 이주용의 크로스를 슈팅으로 연결한 자원이 이규로였다는 점은 이들이 얼마나 높은 곳까지 전진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깊이 올라선 전북의 측면 수비는 앞선의 윙어를 지탱한다. 측면 수비만으로 이들을 틀어막기 어려웠던 성남은 종종 중앙 수비까지 옆으로 따라나왔고, 전북은 문전 앞 공간을 보너스로 얻게 됐다. 이 순간 윙어는 끝줄까지 돌파해 크로스를 올릴 것인가, 아니면 중앙으로 좁혀 들어와 연계를 만들 것인가 등 보다 많은 경우의 수를 쥔다. 더불어 카이오와 이재성-이승기 조합이 만들 수 있는 공격 패턴도 한층 늘어난다. 이처럼 측면 의존도가 높은 팀은 양질의 수비형 미드필더 보유 여부가 경기 결과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고, 신형민은 공격 전개 차원에서 전북을 더 전북답게 만들고 있다.

수비 진영 커버에만 능한 게 아니었다. 신형민은 상대 뒷공간을 직접 부수는 일에도 재능을 기부했다. 커팅 이후 처음 나오는 볼 터치의 방향과 안정감, 그리고 동료의 위치와 공간을 인지하는 시야는 패스의 질로 직결돼 공격의 완성도를 결정짓는다. 이 동작에서 삐걱거릴 경우 재차 상대에게 물려 실점 빌미를 흘릴 수도 있다. 이 중요한 찰나에 신형민은 상공을 가르는 롱패스로 흐름과 템포를 완전히 장악했다. 상대 수비를 뒷걸음질치게 만들고, 골키퍼 박준혁을 앞으로 나오게 했다. 이것이 곧 윙어에게 잠재된 스피드 능력을 끌어낸 원동력이었다.


3년 전 K리그 우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일군 당시, 전북이 입은 옷은 4-2-3-1이었다.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받치고, 앞선 네 명의 공격진으로 시너지의 극대화를 노렸다. 단, 후방에 안정감을 기한 만큼 무게 중심이 뒤로 처질 우려가 늘 따라다녔다. 최 감독 역시 "밸런스에서는 나을지 몰라도 공격을 풀어 나갈 숫자는 부족하다"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2선의 파괴력이 에닝요, 루이스 등이 뛰었던 한창 때보다 떨어진다면 화끈함의 수준도 크게 꺾일 수 있었다. 이러한 딜레마 속, 상황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나로 줄일 수 있었던 데엔 신형민의 존재감이 매우 컸다.

4-1-4-1 중 포백 앞 '1'은 절대 쉬운 자리가 아니다. 상대 패스의 흐름을 읽고선 덤빌 때와 기다릴 때를 구분해야 한다. 중대한 공간을 홀로 떠안은 채 경기의 완급을 조절하는 운영 능력은 물론이요, 공-수 전환의 시발점으로서 기술, 지능, 투쟁심, 피지컬, 패싱력, 수비력, 위치 선정 등 모든 요소가 두루 뛰어나야 한다. 그럼에도 과감히 수비형 미드필더를 하나만 배치한 최 감독은 "신형민 아저씨 덕분이다. 팀에 몇 년 있던 사람처럼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며 보기 드문 미소(?)까지 띠었다. 풍부한 활동량, 노련한 커팅 능력, 뛰어난 전개 장면을 높이 산 그는 "신형민 혼자서도 충분할 것 같았다"고 덧붙였다.


최 감독이 1위를 꺼린 건 '견제' 때문이었다. "원정 경기라도 이기는 경기를 해야 한다. 상대는 1위인 우리를 꺾기 위해 집중력 높은 싸움을 하는데, 이에 맞서 모험적인 경기를 해야 한다"는 데엔 늘 부담이 깔려 있었다. 이런 전북이 역삼각형 형태의 미드필더 조합에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됐다. 신형민을 아래에 두고, 앞선에서 강한 압박을 가해 득점력을 높이는 방법이 통할 수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 최 감독은 "부상 선수 복귀와 상대 팀 성격에 따라 결정할 수가 늘었다"며 전술적 유연성도 함께 언급했다. 이만하면 신형민의 합류가 곧 전북의 스쿼드(양과 질 모두)를 리그 내 독보적인 수준으로 올려놨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터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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