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獨대표 은퇴 클로제, 13년의 인생역전 스토리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08-12 07:27


ⓒAFPBBNews = News1

2014년 브라질월드컵 4강전.

금발의 한 사내가 벨루오리존치의 에스타디오 미네이랑을 가득 채운 6만의 노란 물결을 침묵시켰다. 동료가 찬 슛이 골키퍼 몸에 맞고 흐르자 지체없이 문전 쇄도해 득점으로 마무리 했다. 호나우두(브라질)가 작성한 월드컵 개인 통산 최다골(15골)은 그렇게 깨졌다. 한때 7부리그 선수이자 목공수였던 미로슬라프 클로제(36·라치오)의 작품이다. 클로제의 골은 브라질에게 7실점이라는 수모를 안긴 신호탄이기도 했다. 세계 축구사의 한 페이지가 넘어갔다.

클로제가 마침내 독일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영국 스포츠전문매체 스카이스포츠는 11일(한국시각) 독일 현지 언론을 인용해 '클로제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고 전했다. 2001년 3월 24일 알바니아와의 2002년 한-일월드컵 유럽지역 예선에서 A매치에 데뷔한 이래 13년 만이다. 클로제가 그동안 뛴 A매치는 137경기다. 로타르 마테우스(150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출전 횟수다. A매치 개인 통산 득점에선 71골을 기록해 '전설' 게르트 뮐러(68골)를 넘어 스스로 전설이 됐다.

1978년 폴란드 태생인 클로제는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했다. 그의 아버지 요세프는 1978년 프랑스 리그2(2부리그) 오세르에서 데뷔, 1986년 은퇴했다. 이후 독일에 정착해 독일 국적을 따냈다. 클로제 역시 아버지를 따라 독일 국적을 땄다. 당시까지만 해도 클로제가 아는 독일어는 '예(ja)'와 '감사합니다(danke)' 정도였다. 서툰 말솜씨와 폴란드 출신이라는 편견에 휩싸인 클로제의 돌파구는 축구 뿐이었다. 처음부터 재능을 발휘하진 못했다. 19세까지 7부리그 블라우바흐에서 뛰었지만, 목공수로 '투잡'을 해야 했다. 동네에서 볼 좀 차는 그저 그런 아마추어 선수였다.

기회는 우연찮게 찾아왔다. 1998년 클로제의 가능성을 눈여겨 본 5부리그 홈부르크가 러브콜을 보냈다. 클로제는 곧바로 두각을 드러냈다. 한 시즌 뒤 3부리그 소속이었던 카이저슬라우테른 2군팀에 합류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1군 무대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후 탄탄대로가 펼쳐졌다. 클로제는 카이저슬라우테른에서만 5시즌을 뛰면서 142경기 57골을 기록했다. 모국 폴란드로부터 대표선수 제의를 받았지만, 독일 대표팀의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한-일월드컵에 나서 머리로만 5골을 터뜨려 '헤딩머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독일 대표팀은 브라질에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클로제는 '녹슨전차'의 구원자로 발돋움 했다.

굴곡은 있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을 떠나 베르더 브레멘에서 3시즌 간 63골을 터뜨렸던 클로제는 2007년 독일 최강인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해 2시즌 연속 20골을 돌파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이후 2시즌 동안 11골에 그치자 곧바로 방출 통보를 받았다. 독일 최고의 공격수에서 한물 간 선수 취급을 받았다. 은퇴의 기로에서 선택한 길은 도전이었다. 이탈리아 세리에A의 라치오에 입단하면서 축구인생 2막을 열었다. 땀은 배신하지 않았다. 클로제는 라치오에서 2시즌 연속 16골을 터뜨린데 이어, 지난 시즌에도 부상 악재를 뚫고 8골을 넣으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마리오 고메스(피오렌티나)와 클로제를 저울질 했던 요아힘 뢰브 감독은 결국 클로제의 노련미를 선택했다. 클로제는 브라질월드컵 가나전에 이어 브라질전에서 각각 골망을 가르면서 독일의 통산 4번째 월드컵 정복을 이끌었다.

클로제는 "나는 독일 대표팀에서 특별하면서도 엄청나고 인상적인 시간들을 보냈다"며 "(브라질월드컵을 통해) 팀의 목표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목표도 이뤘다"고 은퇴 소감을 드러냈다. 그는 "공격수의 역할은 골을 넣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동료들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파란만장했던 축구인생과 함께 했던 동료들에게 공을 돌렸다.

출발은 초라했지만, 마지막은 누구보다 빛났다. 프로 무대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울 클로제가 걷는 길은 새로운 역사가 될 전망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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