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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新人)'. 피 끓는 패기에 가슴 설레도 깨지기 일쑤다. 우렁찬 심장 고동에 거칠 것 없어도 흔들리기 십상이다. 프로 무대 데뷔전에 데뷔골까지 뽑아낸 신인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게 예삿일. 어쩌면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젖어서 공주(公州)처럼 지쳐서 돌아온다'는 시인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는 프로에 갓 발 들인 이들을 가리키는 작품일지도 모른다.
부상 변수까지 덮쳤다. 전반 22분 김기희가 태클 과정에서 상대와 충돌하며 아웃되자, 전체 판을 갈아엎었다. 교체 명단에 중앙 수비 자원 이강진이 있었음에도 최 감독의 선택은 '공격수' 카이오의 투입. 4-2-3-1 중 3의 중앙에 섰던 이재성이 후방 배치됐고, 카이오와 동일 선상에서 뛰며 4-1-4-1 시스템을 꾸렸다. 고려대 시절 중앙과 측면을 가리지 않았던 이재성은 2학년 당시 왼쪽 수비까지도 소화한 이력이 있다. 상대 수비를 곤욕스럽게 할 만한 영리한 플레이. 어디에 세워놓아도 일정 수준의 기대치는 충족시킬 탄탄한 기본기. 이 선수 덕에 '닥치고 공격'을 강행하려는 최 감독은 속이 든든했을 터다.
정녕 무서운 건 중원에서도 언제든 공격 태세를 취할 수 있다는 점. 흐름을 읽고 빠르게 쇄도한 움직임에 전반 30분 선제골까지 뽑아낸다. 최철순의 찰진 크로스 당시 전북은 이동국, 한교원에 이어 이재성까지 가세해 페널티박스 내 '공격 3 vs 수비 3'의 숫자 싸움을 만들었다. 볼이 측면으로 빠지면서 벌어진 수비 간격을 놓치지 않았고, 한교원이 여성해의 시선을 끄는 동안 이재성은 한발 앞서 이한샘의 마킹을 완전히 벗겨냈다. 크로스 높이는 공간으로 달려 들며 머리로 연결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헤더의 타점을 완벽히 찾아낸 이재성은 속도가 붙은 볼의 방향을 절묘하게 바꿨다.
리드를 잡고 후반에 돌입한 전북은 경기 운영의 폭도 한결 넓어졌다. 경기 판도가 확연히 바뀌자, 경남의 측면 수비는 전진하기 시작했다. 레오나르도와 한교원은 마침내 뒷공간을 찾았고, 레오나르도의 원맨쇼에 팀 세 번째 골, 이상협의 헤더에 네 번째 골이 터져나왔다. 4골 차를 앞섰음에도 이재성은 90분까지 뛰고 또 뛰었다. 후방에서의 횡-백패스가 나올 때, 재빨리 공간을 창출해 전진 패스의 루트를 하나 더 만든다. 이미 등을 지고 자리를 잡았기에 상대 수비가 도전적으로 나와 부딪히더라도 최소 프리킥 획득이다. 볼을 잡고 돌아서든, 상대에 치여 드러눕든 공격권은 계속 전북이 쥐고 있으니 이런 '복덩이'가 따로 없다.
전북은 종료 직전 경남 이학민에게 한 골을 헌납했다. 무실점 승리를 놓친 데 대해 최강희 감독은 딱히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작 이재성 본인은 "속상해요"라며 아쉬움을 곱씹는다. 조금 더 완벽한 경기를 하고 싶은 욕심 때문은 아니었을까. '강희대제와 아이들'은 16일 FA컵 16강전을 위해 울산 문수월드컵경기장을 찾는다. 경기를 좌우할 치명적인 무기를 지녔음에도 "프로 가고 나서는 대학 동기 (안)진범이 처음 만나요"라며 들뜬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 또 마냥 신인이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