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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은 동반자였다. 자국에서 열린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을 위해 감독과 코치로 함께 했다. 둘은 객관적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하던 독일을 3위에 올려놓았다. 8년이 흘렀다. 상황이 바뀌었다. 한명은 미국의 지휘봉을 잡았고, 한명은 코치에서 감독으로 승격했다. 16강 문턱에서 지략대결을 펼치는 위르겐 클린스만 미국 감독(50)과 요아킴 뢰브 독일 감독(54) 이야기다.
뢰브는 그저 그런 선수였다. 영리한 공격형 미드필더였을 뿐이었다. 하위권팀과 2부리그를 전전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그나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독일 대표팀에 한번도 선발되지 못했다. 1979년 21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된 것이 전부였다. 감독이 된 후 빛을 봤다. 슈투트가르트 감독이 된 뢰브는 발라코프, 에우베르, 보비치의 '매직 트라이앵글'을 앞세워 1996~1997시즌 DFP 포칼 우승, 1997~1998시즌 컵위너스컵 준우승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동반자에서 적으로
클린스만은 독일월드컵 이후 독일 지휘봉을 내려놨다. 후계자는 뢰브였다. 뢰브는 클린스만이 시작한 세대교체를 가속화하며 독일을 역동적인 팀으로 탈바꿈시켰다. 독일은 뢰브 아래서 유로2008 준우승, 2010년 남아공월드컵 3위, 유로2012 4강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클린스만은 2011년 미국대표팀 감독에 임명됐다. 초창기 부진을 거듭하던 미국은 브라질월드컵 북중미예선부터 본궤도에 올랐다. 클린스만식 공격축구가 완전히 자리잡았다.
'히혼의 수치'는 없다
나란히 1승1무를 거둔 미국과 독일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한다. 호사가들은 둘의 인연을 들어 '암묵적으로 무승부 전략을 펼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고 있다. 독일은 1982년 스페인월드컵 히혼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1대0으로 승리, 2라운드에 진출했다. 전반 10분 흐루베쉬의 선제골로 앞서나간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함께 자기진영에서 공을 돌리며 시간을 보냈다. 독일이 승리하면 오스트리아와 함께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었다. 이 경기는 월드컵 사에 '히혼의 수치', '히혼의 불가침조약'으로 남았다. 이 경기 후 국제축구연맹은 조별리그 최종전을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열기로 했다.
클린스만과 뢰브는 선의의 대결을 강조했다. 클린스만은 "'히혼의 수치'는 수십 년이나 지난 일이다"며 "뢰브는 그의 일을 할 것이고 나는 나의 일을 할 것이다. 우리는 독일을 꺾고 16강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낼 것이다"고 잘라 말했다. 뢰브 역시 "우리는 승리만을 원한다"고 했다.
미국, 독일과 함께 G조에 속한 가나와 포르투갈도 최종전에 나선다. 두 팀은 나란히 1무1패 중이다. 최종전에서 승리를 거둔 뒤, 미국-독일전 결과에 따라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다. 이래저래 중요한 클린스만과 뢰브의 대결이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