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최고 선수'의 중동행이 남긴 것들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4-06-12 09:19



가나전을 하루 앞둔 9일 오후, 축구계의 관심은 홍명보호에 쏠렸다. 그 시각 서올 종로구 신문로 축구회관에서는 어느 K리거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적료 50억 원에 3년간 연봉 15억 원, 총 95억 원의 금액을 두고 '잭팟이 터졌다'는 표현이 붙었다.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시선도 있었지만, 스타급 선수의 중동행 이적(알 아인, UAE)이 꺼림칙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2014 K리그 전반기는 '이명주 세상'이었다. 대부분의 플레이를 투 터치 이내로 처리하는 간결함은 이 선수를 포항 축구의 주요 축으로 만들었다. 빠른 전환 덕에 패스가 흐르는 템포는 절정에 달했고, 상대 수비를 슬쩍 넘기는 로빙 패스로 득점 선두 김승대를 거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때로는 본인이 직접 골 욕심까지 내며 1983년 리그 출범 이래 누구도 오르지 못한 '리그 10경기 연속 공격 포인트(5골 9도움)' 고지에 깃발까지 꽂았다. 이제 막 프로 3년 차에 돌입한 선수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센세이션이었다.

이명주는 '도전'을 말했다. "외로움과 새로운 환경, 그리고 언어 등을 적응할 수 있다. 그래서 진출하게 됐다"며 설명했다. 어느 누구도 가타부타 논할 수 없는, 존중받아 마땅한 선수 개인의 선택이었다. 부상 등의 변수가 없다는 가정하에 90년생 이명주가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건 현실적으로 10년 남짓. 현재로선 군대에서 보낼 두 시즌도 빼야 한다. 이런 상황에 K리그 내 국내 선수 최고 연봉액 이동국의 11억 1,4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 액수 제안은 프로 선수라면 뿌리치기 어려운 부분이었을 수 있다.

우려가 없는 건 아니다. '선수 본인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는가', '(월드컵 명단과는 별개로) 대표팀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금의환향할 수 있는가'도 따져볼 필요는 있다. 이명주는 중동에서 뛰던 기존의 곽태휘, 남태희, 유병수와는 다른 케이스다. 이들은 각각 중앙 수비, 윙어, 최전방 공격수로 대표팀에서 한 번쯤 고민해본 포지션의 자원이었다. 반면 이명주가 뛸 4-2-3-1의 정삼각형 미드필더진은 유럽에서 뛰는 몇몇 자원이 붙박이로 들어선 상태다. 더욱이 아시안게임 와일드카드에 대해 이광종 감독이 "월드컵 대표팀에서 뽑는다"고 못까지 박았다. '노출'이 절실한 이 선수에게 중동은 썩 좋은 장소가 아닐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해도 '선수 개인'의 문제다. 가치관에 따라 내린 선택이 이명주 본인에게 정답이면 그만이다. 다만 K리그는 또다시 '리그 차원'의 고민을 떠안게 됐다. 어떤 생존법을 택해야 할지에 대한 '리그 포지셔닝'을 고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데얀과 하대성이 빠진 서울이 휘청하지 않았던가. 최근 5년간을 따져봤을 때, 가장 불안한 행보임은 부인하기 어렵다. 잘하는 선수가 나가면 (팀 조직력 및 감독 지도력과는 별개로) 전력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이치. 인정하기 싫어도 리그의 질 하락 및 하향 평준화의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리그 최정상급 선수가 떠난 K리그의 경쟁력을 지적하는 현장 지도자는 한둘이 아니다.

선수를 키우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육성은 육성이고, 영입(보호)은 영입이다. 갓 데뷔한 신인이 리그 최정상급 활약을 펼치는 건 확률상 쉽지 않은 일이며, 이런 선수가 나타난다고 해도 머잖아 내보낼 각오를 해야 한다. 신인 드래프트? 지난해 지원자 494명 중 선발된 신인은 153명, 그것도 진흙 속 진주 찾는 심정으로 번외 지명을 공략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43명). '연습생 신화'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 자유 계약 및 우선 지명으로 들여온 선수도 K리그 무대는 버겁다. 모기업은 지갑을 열 마음이 없는데, 타 리그의 자금력은 감당하기 어려운 속도로 몰려온다. 소비자(관중)는 언제까지나 느긋하게 기다릴 만큼 관대하지도 않다.

5년 연속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오른 아성이 얼마나 갈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있는가. 당장 지난해만 해도 광저우 헝다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 가운데, 중국 및 중동발 자금은 좋은 선수를 쉼 없이 수집하고 있다. 이대로 셀링 리그(Selling League)로 전락할 경우 마르지 않는 샘인 '유스 시스템'도 결국 '타 리그 선수 수급 도구'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열매가 열리는 것(선수 육성)과는 별개로 괜찮은 열매에 대한 투자(선수 영입)도 따라야 하는데, 지금은 현상 유지도 힘들어 보인다. 생존법에 대한 고민이 절실해 보인다. '중동행', '중국행'은 하나의 트렌드가 아닌, K리그의 생사와 직결된 경고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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