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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포토스토리] 추억의 2002 황선홍 편, 월드컵 첫 승의 숙원 푼 스트라이커

허상욱 기자

기사입력 2014-06-05 06:34


한국의 2002년 월드컵 첫 골이자 첫 승을 안긴 득점을 성공하고 환호하는 '황새' 황선홍

이회택-차범근-최순호를 잇는 한국의 정통 스트라이커는 바로 '황새' 황선홍이었다. 황선홍은 1988년 11월 7일 국가대표에 발탁된 이래 1990 이탈리아, 1994 미국, 1998 프랑스, 2002 한일 월드컵까지 월드컵 본선에 4회 진출했고, 14년간 103경기 출장-50득점의 대기록을 남겼다. 스트라이커 황선홍은 데뷔 전에서 골을 넣었다. 12월 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안컵 일본 경기였다. 그리고 A매치에서 마지막으로 터트린 골이 바로 2002년 6월 4일 폴란드 경기에서 넣은 결승골이다. 한국에 월드컵 본선 첫 승을 선사한 득점이었다.


2002년 6월 18일. 이탈리아를 격침하고 8강 진출을 확정한 그 날. 경기 종료 후 태극기를 두른 황선홍이 경기장을 걷고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서 한국은 첫 승에 대한 기대가 컸다. 당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에 맞서 0-2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터진 홍명보의 만회골과 서정원의 극적인 동점골이 16강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한껏 올려놓았다. 황선홍은 독일 전에서 골을 성공시키기는 했지만 약체 볼리비아 전에서의 좋지 않았던 모습에 비난이 쏟아졌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은 그의 인생에 전환점으로 다가왔다. 최고의 모습으로 대표에 선발된 그는 프랑스로 향하기 전날 벌어진 중국과의 평가전에서 당한 안타까운 부상으로 본선에 한 게임도 뛰지 못한 채 최악의 경기들을 지켜봐야만 했다.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한 황선홍은 1999년 득점왕을 차지한 것은 물론 만년 중하위권 이었던 팀을 전후기 통합 5위로 끌어올리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그는 1999년 25경기에 출장해 무려 24골이나 쏟아부으며 세레소 오사카 역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이름을 남겼다. 이후 황선홍은 2000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한 뒤 2002년까지 활동하다 국내로 돌아왔다.
98년 8월 황선홍은 일본 J리그 세레소 오사카로 이적을 한다. 러브콜을 받고 간 것이 아닌 자신이 직접 찾아가 연습생 위치에서 다시 시작을 한 것이다. 최악의 상황, 연습생이라는 치욕을 자신의 실력으로 만회하며 다음 해 J리그 25경기 24득점으로 득점왕에 올라 그의 인생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맞이한다. 마지막일 수밖에 없는 2002 월드컵에 어렵게 승선한 황선홍은 은퇴 선언을 하는 배수진을 치며 경기에 임했다.


2002년 6월 4일 폴란드 전에 앞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황선홍.
34세, 마지막일 수 밖에 없는 월드컵에 어렵게 승선한 그의 간절함이 묻어나는 장면이다.

폴란드 전. 황선홍이 첫골을 넣은 후 동료들과 뒤엉켜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런 그의 노력은 2002년 6월 4일, 2002 한일 월드컵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전반 26분 자신의 오명을 모두 날려버릴 수 있었던 멋진 첫 골을 집어넣었다. 월드컵 4강의 발판이 되었던 이 골은 그가 A매치에서 마지막으로 터트린 골이자 한국에 월드컵 본선 첫 승을 선사한 득점이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 미국 전, 전반 22분 수비수 제프 아구스와 헤딩을 다투던 황선홍이 오른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어 최주영 의무팀장에게 치료를 받고 있다.

맏형 황선홍이 피를 흘리고 치료를 받고 있는 장면이 전광판에 비쳤다. 부상으로 나가있는 사이, 미국의 선취골이 터졌고 황선홍은 자신의 공백이 실점으로 이어졌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황선홍은 "빨리 빨리" 외치며 울부짖었다.
예선 2차전 미국전, 황선홍의 붕대 투혼이 온 국민을 감동시켰다. 전반 22분 미국 수비수 제프 아구스와 헤딩을 다투던 황선홍은 오른쪽 눈두덩이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다.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선혈을 닦아내고 머리에는 붕대를 칭칭 감고 부상에도 아랑곳없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붕대 투혼을 발휘해 지고 있던 경기를 무승부로 만들었던 그 모습은 대한민국의 투혼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월드컵이 끝난 2002년 11월 20일 황선홍은 은퇴식을 가졌다. 브라질과의 평가전을 뛰고 난 후 홍명보와 함께 공로패와 골든슈를 받아든 황선홍은 전광판에 과거 자신들의 플레이가 영상으로 나오자 감회에 젖었다. 후배 태극전사들의 등에 타 경기장을 돌며 환호하는 팬들에 손을 흔들어 답례했고, 붉은 악마들이 눈물로 아쉬움을 표하자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2002 6 29 대구, 터키와의 3-4위전이 끝난 후 선수들에게 행가레를 받는 황선홍.
뛰어난 공격수였던 그는 언제나 상대 팀에게 집중 수비 대상이었다. 거친 수비로 인한 부상이 선수 생활 내내 괴롭혔으나 이를 잘 극복했으며 부상을 입혔던 상대 수비를 향한 미움마저 딛고서 재활 기간을 잘 참아내어 마침내 은퇴하기 직전까지 훌륭한 공격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K리그 클래식 2013 마지막 경기, 후반 종료직전 터진 김원일의 극적인 결승골로 1대0 승리를 거두며 선두 울산(승점 73)을 승점 1점차로 꺾고 K-리그 정상에 등극한 후 선수들에 행가레를 받는 황선홍 감독.
황선홍은 이제 K리그 클래식의 명장 반열에 올랐다. 외국인 용병 대신 유스시스템에서 배출한 선수들과 기존 세대들의 조화로운 선수 운용으로 팬들은 포항의 축구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FC바르셀로나의 '티키타카(짧고 간결한 패스 게임)'에 빗대어 '스틸타카'라는 별명을 붙여 열광했다. 포항은 지난해 FA컵과 리그 우승을 동시에 차지한 첫 번째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올시즌 황선홍 감독의 포항의 목표는 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이다.

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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