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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신상담' 울산의 철퇴, 포항을 울렸다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4-03-09 14:30 | 최종수정 2014-03-10 07:28


◇울산 선수단(왼쪽)이 8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펼쳐진 2014년 K-리그 클래식 개막전에서 '디펜딩챔피언' 자격으로 늦게 입장한 포항 선수단에게 축하 박수를 건네고 있다. 사진제공=포항 스틸러스

불과 3개월 전이었다.

천당과 지옥이 갈렸다. 2013년 12월 1일 울산월드컵경기장에서 울산과 포항이 K-리그 클래식 대권을 놓고 만났다. 비기기만 해도 우승컵에 입맞출 수 있었던 울산은 안방잔치를 예감했다. 포항은 어떻게든 울산을 잡아야 하는 입장이었다. 후반 추가시간의 끝자락, 주심이 시계를 들여다 보던 사이, 운명이 춤을 췄다. 포항은 기적을 만들었고, 울산 눈물을 흘렸다. 프로축구 역대 최고의 반전 드라마가 그렇게 끝났다.

비운의 주인공 울산이 8일 포항 스틸야드를 찾았다. 디펜딩챔피언 포항과 2014년 클래식의 문을 함께 열었다. 포항은 더블(클래식-FA컵) 잔칫상을 차려놓고 칼을 품은 울산을 맞이했다.

설전으로 달아오른 동해안 더비

그리스전의 여파는 없었다. 조민국 울산 감독은 홍명보호에 합류했다가 경기 하루 전 팀에 합류한 김승규와 이 용, 김신욱을 모두 선발 명단에 포함시켰다. 3명 모두 포항전 선발 출격은 의외였다. "경기 전날 밤까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3명의 선수 모두 출전을 강력히 원했다. 시즌 중반이라면 절대 안될 결정이었지만, 초반인 점이 다행이었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뛰게 하는 게 감독의 도리라 생각했다." 선발 명단을 확인한 황선홍 포항 감독이 묘한 미소를 흘렸다. "승부처에 투입이 될 것으로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선발 출전은 의외다. 하지만 3명 모두 출격한다는 가정 하에 훈련을 했다."

지도자 데뷔 15년 만에 프로 사령탑 자리에 앉은 조 감독은 여유로웠다. 밑바닥에서 다진 관록과 평정심이었다. 첫 판부터 정곡을 찔렀다. "포항이 지난해와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승부처에서 역할을 해줬던 박성호 노병준 황진성이 빠졌다. 그만한 선수들이 없다. 포항은 경기력 위주로 풀어가는 팀이다. 지난해 같지는 않을 것이다." 황 감독이 맞받아쳤다. "지난해처럼 하면 또 우승을 해야지(웃음). 우리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믿으면 된다." 명불허전 '동해안 더비' 다웠다.

숨죽이던 울산의 철퇴, 잔칫상을 엎었다

챔피언 세리머니가 경기 전 포항 스틸야드를 달궜다. 포항은 지난해 차지한 클래식과 FA컵 우승 트로피를 꺼내들고 홈 팬들 앞에서 세리머니하며 기쁨을 한껏 누렸다. 그라운드 도열해 포항 선수단에게 축하 박수를 보내는 울산 선수들의 눈은 전의로 불타고 있었다.


울산은 김신욱의 높이와 하피냐의 빠른 발로 포항 수비진을 괴롭혔다. 제로톱으로 무장한 포항의 공세에는 어딘가 힘이 빠져 있었다. 소문난 잔치에 비해 먹을 것이 없었던 전반전이었다. 45분 간 몸을 푼 포항이 먼저 승부수를 띄웠다. 후반 11분과 12분 역습 상황에서 조찬호와 고무열이 잇달아 김승규와 맞서는 찬스를 잡았다. 그러나 김승규의 신들린 선방 앞에 포항은 머리를 감싸쥐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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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감독이 과감하게 카드를 던졌다. 후반 14분 김용태를 빼고 고창현을 투입한데 이어, 20분에는 한상운 대신 백지훈을 집어 넣으며 분위기를 서서히 바꿨다. 황 감독은 배천석과 신영준을 잇달아 내보내면서 공격의 불을 지폈다. 하지만 찬스가 두 차례나 무산된 포항의 공격 불씨는 점점 빛을 잃어갔다. 결국 후반 32분 김신욱의 발끝이 포항의 안방 잔칫상을 엎어버렸다. 1만6000여 관중이 운집한 포항 스틸야드가 일순간 침묵에 휩싸였다. 3개월 전 굵은 눈물을 흘렸던 울산 서포터스는 승리 세리머니인 "잘~가세요! 잘가세요~" 노래를 합창했다.

담담한 승장과 태연한 패장, 그 이면은

조 감독은 무표정 했다. 프로 데뷔 첫 승의 기쁨은 없었다. "행운이 안 따르는가 싶었는데 끝날 때쯤 따라줬다. 그게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내용은 아쉽지만 결과에 만족하겠다." 그는 "김신욱이 전반전을 마치고 피로해 보였다. 후반 들어 교체할 생각이었지만, 움직임이 전반 초반보다 나았다. 기대를 했는데 결승골을 넣어 기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도 "수비 라인을 올리다 보니 역습 대비가 미흡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선수들이 (대표팀에) 차출되기 전까지 승점을 쌓아야 한다"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을 주문했다. 긴장은 지난해 아쉽게 놓친 우승 목표를 다잡는 힘이었다. 조민국식 리더십의 실체였다.

패장 황 감독은 태연했다. 여유가 감돌았다. "이제 첫 경기를 치렀을 뿐이다." 그는 "상대가 힘이 있고 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팀이라 전반전 경기력이 좋지 못했다. 후반전에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결국 축구는 골을 넣어야 이긴다. 그 부분이 아쉽다." 사실 울산전 패배의 여파는 상당했다. 세레소 오사카(일본)와의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홈 첫 경기 무승부에 이어 울산전까지 패하면서 시즌 무승이 이어졌다. 울산전 후반 중반 고무열이 근육 경련을 호소하면서 쓰러졌다. 울산전을 마치고 곧장 부리람(태국) 원정을 떠나는 마당에 체력, 심적 부담이 더욱 커졌다. 황 감독은 "준비를 잘 해 대처하겠다"고 미소를 지으면서 분위기 반전을 다짐했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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