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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리그 데뷔전을 치른 '23세' 안용우부터 642경기째를 뛴 '44세' 김병지까지, 모두의 승리였다.
상암벌에서 서울은 '무적'이었다. 2008년 83.3%, 2010년 93.3%, 2012년 88.6%의 경이로운 홈 승률을 기록했다. 2013시즌에도 홈에선 단 2패뿐이다. 홈 승률 76.3%를 기록했다.
전남은 서울만 만나면 작아졌다. 최근 서울전 5연패였다. 강팀에 약했다. 지난 시즌 서울 전북 포항 울산 등 소위 '빅4' 상대 전적은 1무7패로 절대 열세였다. 2007년 이후 전남은 상암벌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2012년 여름, 하석주 감독의 부임 이후에도 서울은 줄곧 아픈 이름이었다. 서울과의 3경기에서 8골을 허용했고, 고작 1골을 넣었다. 두번이나 0대3으로 완패했다. 서울은 전남과의 홈 4경기에서 연속 무실점을 기록하는 극강의 경기력을 선보였다. 서울과의 개막전, 모든 기록은 '원정팀' 전남에게 절대 불리했다. 승부욕 강한 하 감독은 속이 쓰렸다. "선수 때는 한쪽 눈을 감고도 최용수를 이겼다"는 뼈있는 농담에는 한이 서렸다.
"신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있습니다." 명량대첩을 앞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한마디는 비장했다. 전남 진도 울돌목, 충무공이 13척의 배로 왜군의 배 133척을 물리친 '기적의 현장'이다. 전남은 1월 동계전훈 직전 명량대첩 현장을 찾았다. 선수단의 정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일종의 '의식(ritual)'이었다. 선수단은 '울돌목의 정신'을 몸으로 체득했다. 8일 전남 원정 서포터석엔 '필사즉생, 생즉필사'라는 대형 걸개가 나부꼈다. 상암벌을 점령한 1만여 명의 홈팬들에 맞선 100여 명의 전남 팬들은 힘차게 노란 깃발을 흔들었다.
돌아온 스테보의 존재감은 압도적이었다. 유니폼 상의를 바지에 밀어넣은 치열한 모습으로 K-리그 복귀전에 나섰다. 서울의 데얀이 그러했듯 전남의 스테보는 묵직한 존재만으로도 위협이 됐다. 현란한 마르세유턴(한발로 볼을 정지시킨 후 몸을 360도 돌리며 수비를 따돌리는 기술)까지 구사하며 서울 수비를 농락했다. "스테보 진짜 열심히 한다!" 전남 서포터들의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깜짝 데뷔전에 나선 측면 공격수 안용우는 빠른 돌파로, '광양루니' 이종호는 종횡무진 몸을 던지며 찬스를 만들었다. 현영민-방대종-임종은-김태호로 이어지는 신구 수비라인의 조화는 일품이었다. 경험이 풍부한 '형님'들의 가세로 경기운영엔 한층 여유가 생겼다. '베테랑 골키퍼' 김병지는 잇단 선방으로 최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팽팽한 균형은 후반 14분 갈렸다. 이종호가 영리한 움직임으로 페널티킥을 유도했다. 이현승이 침착하게 골을 밀어넣었다. 지긋지긋한 서울전 5연패를 끊어낸 역사적인 골이었다.
하 감독 개인에게도, 전남에게도 특별한 첫승이었다. 하 감독은 2012년 지휘봉을 잡은 이후 처음으로 서울을 이겼다. '다크호스' 전남의 가능성이 현실로 입증됐다. 서울을 이긴 전남의 전투력과 자신감은 급상승했다. 하 감독은 "서울의 홈 승률, 상대전적 등 불리한 기록들을 모두 넘어섰다. 개막전 승리의 가장 큰 소득은 자신감"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올시즌, 강팀들을 상대로 충분히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신인도, 베테랑도, 토종선수도, 외국인선수도 '팀 정신' 아래 하나 됐다. 하 감독은 스테보, 레안드리뉴 등 외국인선수들에게 "뭔가 보여주려고 하지 마라. 영웅이 되려고 하지 마라. 팀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만 하라"고 주문했다. 크리즈만의 부상으로 개막전에서 깜짝 기회를 잡은 '초짜' 안용우에겐 "평소처럼 편안하게 해라. 오늘 못한다고 해도 실망할 것없다. 나는 변함없이 너를 믿는다"고 말해줬다.
경기 직후 하 감독은 라커룸에서 "승패를 떠나, 각자의 자리에서 100% 이상을 해냈다. 내가 생각한 전술을 100% 해줬다. 오늘 같은 경기 내용이라면 져도 괜찮았다. 축하한다"는 말로 선수들의 투혼을 치하했다. 첫 승에 대한 자만심은 경계했다. 승리 후 선수들에게 애써 기쁜 표정을 감춘 이유다. "올시즌 12개팀의 경쟁은 첨예하다. 12개팀의 전력차는 종이 한장이다. 한골차, 분위기차다. 절대로 자만해선 안된다. 연승을 하고, 역전승을 할 수 있는 진정한 강팀으로 거듭나야 한다. 앞으로도 오늘처럼 감동적인 경기를 하자"고 격려했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