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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수비수 김원일(27)을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게 '해병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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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의 어머니는 197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 여자 핸드볼을 이끌었던 라이트백 장천신씨(55)다. 한성여대 1학년이던 1977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아여자선수권에서 숙적 일본을 37년 만에 꺾고 사상 첫 세계여자선수권 출전권을 따낸 인물이다. 1979년 콩고에서 열린 모스크바올림픽 예선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나 정치적 이유로 대회 참가가 무산되며 올림픽과는 연을 맺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가 초석을 다진 여자 대표팀은 1984년 LA올림픽 은메달로 첫 '우생순' 신화를 썼다. 핸드볼계 관계자는 "뛰어난 미들속공 능력 뿐만 아니라 수비까지 다재다능했던 선수"라고 평가했다. 장 씨는 "세계 대회에 나설 때는 왜소한 키를 만회하려고 일부러 머리를 부풀리는 파마를 하기도 했다"며 웃었다.
1984년 인천시청을 끝으로 은퇴한 장 씨는 이듬해 결혼, 1986년 첫째 아들 김원일을 낳았다. 아들을 프로 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었다. 단지 '사내 아이니까 튼튼하게 자라려면 운동 하나 쯤은 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운동을 제대로 시킨다면 1순위는 핸드볼이었다. 하지만 김원일이 선택한 길은 축구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1994년 김포 이회택축구교실에서 시작해 1999년 통진중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원일은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축구를 곧잘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핸드볼보다는 축구를 하고 싶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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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시절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를 누볐던 어머니와 달리 아들의 축구인생은 험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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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일은 "어머니가 집에 있을 때면 전술 이야기를 많이 하신다"고 말했다. 같은 선수 생활을 했던 만큼 장 씨는 아들의 고충을 이해하면서도, 늘 부족함을 지적한다. 장씨는 "내가 운동을 해보니 부모가 곁에 맴돌면 불편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냥 묵묵히 주변에서 바라보는 것이면 족하다"면서도 "(김)원일이는 아직 많이 부족한 선수다. 볼을 잡을 때마다 실수로 팀에 폐를 끼칠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원일은 "선수 경험이 있으셔서 집에서 먹는 것이나 생활은 불편함이 없게 해주신다"고 웃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장 씨는 "중학생 시절부터 '나중에 크면 건강하고 성실한 여자 핸드볼 선수와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고 한마디를 던졌다. 당황한 김원일은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칠 뿐이었다.
아들의 바람은 어머니의 건강이다. 굴곡을 넘어 빛을 보기 시작한 선수 인생을 바탕으로 호강 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다. 어머니의 꿈은 무엇일까. "성실히 노력하면 언젠가 보상을 받기 마련이다. 그저 지금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길 바랄 뿐이다. 내가 단 태극마크를 아들까지 달면 그것도 큰 기쁨이 되지 않을까."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