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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분다 '강원의 계절'이 왔다

임기태 기자

기사입력 2013-11-01 11:43



찬바람에 몸이 움츠러든다. 이맘때면 10월의 마지막 날을 적신 <잊혀진 계절>만 있는 게 아니다. 끝을 향해 치닫는 K리그클래식 순위표는 또다시 '강원의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최근 5경기 4승 1무, 올해도 어김없이 '승리의 부스터'를 장착한 기세엔 쉼표가 없다. 이 성적만 놓고 보면 '명장' 김호곤 감독과 함께하는 울산(4승 1패)보다도 앞서는 흐름으로 K리그클래식 14개 팀 중 단연 으뜸이다.

지난해 11월의 기억이 생생하다. 광주 대신 1부 리그 잔류를 결정지었던 성남의 탄천종합운동장, 손이 꽁꽁 얼어 카메라 셔터 누르기 어려웠던 날씨에도 현장 분위기는 활활 타올랐다. 감격한 김학범 감독은 "힘들었다."는 말부터 꺼냈다. "사실 최악의 상황까지 생각을 했다."는 그는 "내게서 바람이 불면 선수단엔 태풍이 분다. 속은 썩어가면서도 겉으론 웃어야 했다."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정규리그를 꼴찌로 마쳤고, 스플릿 일정 시작부터 무기력하게 2연패를 당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9월 말부터 강원의 생존 본능이 꿈틀대기 시작했고, 남은 일정을 7승 3무 2패(상주전 2승 포함)로 마무리 지으며 끝내 살아남았다.

16개 팀이 14개로 줄었고, 이듬해에는 플레이오프를 거쳐 최대 2.5개 팀이 강등될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역시 학범슨'이라는 평을 받았던 김학범 감독이 "이제부터 잘못된 건 전적으로 내 책임이다."라며 자신감을 내비쳤으니 강원은 두려울 게 없었다. 하지만 2013 시즌의 뚜껑을 열었을 때, 안타깝게도 강원의 성적은 그 호기로움을 따라가지 못했다. 5월 중순 시즌 첫 승을 거두며 상승 곡선을 그리는 듯했으나, 7월 말부터 포항, 전북, 제주를 연이어 만나는 고비를 넘지 못했다. 포항과 전북 원정에서 휴가철 교통 지옥의 핸디캡까지 안고 싸운 강원은 내리 4골씩을 내주며 무릎 꿇었고, 홈에서마저 제주에 0-4로 무너지고 말았다.


이사진은 김학범 감독을 경질하고 김용갑 전 광저우 수석코치에게 바통을 넘겼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이 결정에 '?'를 달고 싶었다. 김용갑 감독의 능력에 의구심을 품은 게 아니다. K리그의 감독으로 거론될 정도라면 그 능력엔 이견이 없다. 다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톡 하고 건들면 터질 것만 같은' 더없이 예민한 팀의 지휘자를 무턱대고 바꾸기엔 경기 일정이 너무 빠듯했다. 김학범 감독이 급히 자리를 잡았던 지난해 7월도 마찬가지. "제일 힘든 건 시기상의 문제다."라며 달고 살던 담배에 그의 목소리가 잠겨가는 동안 강원은 6연패에 허우적댔다. 조금 더 올라가 보면 최순호 초대 감독의 뒤를 급히 이은 김상호 감독 때도 똑같았다.

김용갑 감독은 8월 18일 강릉 종합운동장에서 인천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렀다. 1-2로 패배를 당한 뒤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김용갑 감독에게 "밖에서 지켜본 강원과 직접 지휘한 강원이 어떻게 달랐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큰 차이는 못 느꼈다."면서 "우리 선수들에게서 많은 가능성을 봤다."고 덧붙였다. 행운이 깃든 골로 득점에는 성공했으나, 객관적인 경기 내용에서는 변화의 가능성을 보이지 못했다. 그러기엔 김용갑 감독이 지휘한 '3일'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았다. 경기 후 강원의 서포터즈와 도민들은 경기장 입구 앞에 늘어서 불만을 토로했다. 임은주 사장이 직접 나와 이 상황을 설명하길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

강원은 대전, 성남 원정, 그리고 홈에서 맞은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울산전에서도 패했다. 14개 팀 중 13위에 머물렀고, 최하위 대전이 턱밑까지 쫓아왔다. 지난해 강원의 기적 같은 행보를 돌아봤을 때, 생존을 위해서는 속된 말로 '미친 선수'가 필요하다. 작년엔 '신(神)이라 불리는 사나이' 지쿠가 그 몫을 톡톡히 해냈다. 이 선수는 스플릿 일정 들어 10경기에서 7골 3도움을 뽑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기록뿐 아니라 경기 전체를 주무르며 동료들의 공격 포인트를 끌어냈고, 팀의 고공 행진을 주도했다. 반면 김용갑 감독은 전재호를 중앙에 배치하는 변화를 주고 김동기, 김봉진, 이종인 등을 활용했으나, 뚜렷한 효과를 보지는 못했다.

'올해는 어렵겠다.'고 속단했다. 스플릿 라운드의 시작이었던 대구, 성남전에서도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평가가 완전히 틀렸다. 김용갑 감독을 비롯한 선수단은 짧은 휴식기 동안 팀을 몰라보게 바꾸어놓았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마지막 날 이 짐 저 짐 막 쑤셔 넣은 가방 같았던 뒤죽박죽 경기력은 떠나기 직전의 잘 정돈된 짜임새에 설렘까지 갖췄다. 매 경기 내준 1실점이 아쉽지만, 공격진은 상대 자책골이 있었던 제주전 외 4경기에서 9골을 뽑아냈다. 소년 가장 최진호가 건재했고, 포지션을 변경한 전재호가 힘을 보탰다.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김봉진, 김동기, 이우혁까지 터졌고, 기존의 이준엽과 전역생 김영후까지 가세했다.

물론 아직 축배를 들기엔 이르다. 대전(홈), 경남(원정), 전남(원정), 대구(홈), 제주(홈)와의 5경기가 남았다. 한 경기를 덜 치른 13위 대구에 비해 골득실에서 불리하고, 12위로 마친다면 K리그챌린지 1위 팀과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싸워야 한다. 그럼에도 "시즌이 끝날 때까지 한 선수도 포기는 없다."는 김용갑 감독 체제의 강원이라면 다른 팀들에도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강원의 계절'이 11월 말까지 이어질까. 그래서 또다시 '생존왕'다운 면모를 과시할 수 있을까. 깊어가는 가을 속 K리그클래식 하위스플릿의 전쟁이 더욱 뜨거워진다.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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