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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졸업반 3총사'가 말하는 정기전 승리

박아람 기자

기사입력 2013-10-01 11:17


사진 = 좌측부터 송수영, 김도혁, 유성기.

후반 추가시간, 고려대(이하 고대)의 프리킥 지점 앞에 위치한 연세대(이하 연대) 송수영이 시간을 지연했다는 이유로 두 번째 경고를 받았다. 신재흠 감독이 테크니컬 라인까지 벗어나 격하게 항의했으나, 김성호 주심의 퇴장 판정에 번복은 없었다. 규정상 운동장을 빠져나와야 했던 이 선수는 육상 트랙을 터덜터덜 걸어 나오면서도 피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라운드에 남은 유성기와 김도혁은 후배들을 다독여 악착같이 버텨냈고, 종료 휘슬이 울린 뒤에야 비로소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있었다. 28일 오후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13 축구 정기전은 연세대의 3-2 승리로 막을 내렸다.

1학년부터 4학년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정기전을 뛰며 중원을 책임져 온 김도혁은 흐느껴 울었다. 그의 뺨을 적신 건 '기쁨과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지난 7월 추계대학연맹전에서 고대를 2-0으로 꺾은 것을 비롯해 비정기전에서는 연대가 웃는 날이 많았지만, 정기전 무대에만 서면 이상하리만치 약해졌다. 한두 번 무너졌던 게 쌓이고 쌓여 어느덧 4연패. 연대를 지독히도 괴롭혀온 정기전 연패에 마침표를 찍던 날, 그는 "형들이 생각났다. 함께 뛰면서 한 번도 못 이겼는데, 이제야 이겨서 너무 미안하다."는 말부터 남겼다. 그간 흘린 슬픔의 눈물을 모두 보상 받을 달콤한 눈물이었다.

사실 90분이 모두 잘 풀린 건 아니었다. 가슴이 철렁했던 순간도 있었다. 고대의 안진범에게 환상적인 발리킥으로 동점골을 얻어맞던 장면에서는 김도혁에게도 상당한 책임이 있었다. 측면에서 넘어온 크로스를 끝줄까지 추격하지 못해 빌미를 내준 것. 그럼에도 "동료들을 믿으며 정신 차리고 플레이한 것이 오히려 더 큰 동기부여가 됐다."고 할 만큼 연대는 끈끈했다. 슬그머니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 중거리 슈팅으로 득점을 노릴 능력을 갖췄음에도, 고대 이재성을 대인 마크하라는 지시를 위해 헌신했다. 수비적으로 땀 흘리며 고대의 공격 전환을 꾸준히 방해한 것은 연대의 팀 밸런스를 지탱한 밑거름이었다.

유성기에게는 이번 승리가 더 특별했다. 팔에 두른 주장 완장의 무게가 이 선수의 숨을 조여 왔던 게 사실. 게다가 정기전을 앞두고 떠난 중국 쿤밍 전지훈련에서 발목을 다쳐 홀로 쓸쓸히 귀국한 터라 그 상실감은 더 했다. 몸이 완전치 않았음에도 그는 풀백의 역동적인 오버래핑으로 측면에서의 연계를 무기 삼던 고대의 공격력을 온몸으로 상대해냈고, 지속적으로 상대의 템포를 죽이며 수비적인 문제를 줄여나갔다. 또, 후반 12분에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팀 내 세 번째 득점까지 올렸다. "지난 승리보다 몇 백 배는 더 행복하다."며 운을 뗀 유성기는 "그동안의 4연패가 5연패가 돼 징크스로 이어질 것 같아 걱정도 했다."는 말과 함께 그제야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연대가 중국의 쿤밍을 찾은 데에는 신 감독의 관록이 크게 작용했다. 국내 몇몇 프로 팀들이 시즌 개막 직전 동계 훈련의 마지막 코스로 찾았던 쿤밍은 고지대로 체력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훈련에 적합하다. 정기전이 열릴 잠실종합운동장이 지난 7월 동아시안컵을 대비해 잔디 보수를 했다고는 하지만, 혹독할 만큼 더웠던 지난 여름 기후에 적잖은 부분이 상했고, 더욱이 축구 경기 직전 열린 럭비 경기로 더 많이 망가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이를 예상한 신 감독은 세밀한 패스 게임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고, 피지컬적인 성격이 강조될 승부에 대비해 본교의 인조 잔디를 벗어나 천연 잔디에서의 체력적인 싸움을 신경 썼다.

실제로 연대는 빌드업에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피치 사정이 좋지 않았던 탓에 후방에서 풀어 나오는 공격 전개 중 김도혁이 보유한 왼발의 세밀함에 기댈 기회도 평소보다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발을 딛을 때마다 모래가 튀어오른 측면을 거치기도 여의치 않았다. 상황이 이러하자, 연대는 오히려 단번에 상대 진영으로 볼을 때려 넣은 뒤 송수영, 김현수, 최치원 같은 발 빠른 자원의 개인 능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택했다. 전술적으로 수비 블록을 갖추고 있는 고대 수비를 상대로 무리하게 만들어가기보다는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것이 어쩌면 더 효과적일 수 있었다.

이런 신 감독의 수는 제대로 먹혀 들어간다. 김도혁과 유성기가 수비적으로 많은 공을 세웠다면 공격에서는 단연 송수영이었다. 때로는 탐욕으로 비칠 수도 있었던 이 선수의 플레이는 올해 들어 부쩍 성숙해졌고, 상대 수비를 앞에 세워놓고도 기가 막히게 골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감탄스러웠다. "나 때문에 이긴 건 아니다."라며 너스레를 떨었으나, 이 선수가 전반 4분 만에 고대 수비 진영을 휘저으며 뽑아낸 골에 연대는 남은 시간 내내 보다 많은 경기 운영의 선택권을 갖고 임할 수 있었다. "비정기전에서 완승했지만, 정기전은 아예 다르다. 그래서 더욱더 절실히 준비했다."는 말엔 거짓이 없었다.

올해를 끝으로 연대를 떠나는 이들은 K리그 클래식 팀들과도 연결되는 등 조금은 어수선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시선은 왕중왕전으로 모인다. U리그 중부 2권역에서 10승 3무 1패로 2위 동국대에 승점 4점 앞서 1위를 지키고 있는 이들의 목표는 '왕중왕전 2연패'. 정기전을 승리로 이끈 이들의 경험이 연대에 또 다른 추억을 선물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홍의택 객원기자, 제대로 축구(http://blog.naver.com/russ1010)>

※객원기자는 이슈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위해 스포츠조선닷컴이 섭외한 파워블로거입니다. 객원기자의 기사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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