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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의 '게으른 천재' 지쿠를 깨운 김용갑의 한 마디

박상경 기자

기사입력 2013-08-30 09:30


◇강원 외국인 선수 지쿠(오른쪽). 사진제공=강원FC

강원의 '루마니아 특급' 지쿠는 양날의 검이다.

한때 이탈리아 세리에A 인터 밀란에서 뛸 정도로 출중한 기량은 모두가 인정한다. 느긋한 플레이 속에 감춰둔 킬패스와 뛰어난 위치선정, 골 결정력은 상대팀 수비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꾸준하지 않다. 속된 말로 게으르다. 훈련은 대충이고, 실전에서도 걸어다니는 모습이 잦다. K-리그 클래식 무대를 처음 밟은 포항에서 정착하지 못했던 이유다. 지난해 강원 임대 후 '임대 돌풍'의 주역 역할을 톡톡히 했지만, 이런 기질엔 변함이 없다. 지쿠가 지난해 맹활약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남 일화 시절 모따 등 외국인 선수 다루기에 일가견을 드러냈던 김학범 감독의 역량이 컸다고 입을 모은다.

이런 지쿠가 최근 부진했다. 파괴력은 떨어졌고, 존재감 마저 희미해 졌다. 최근 훈련에선 '배가 아프다'며 드러 누웠다. 김용갑 감독이 강원 지휘봉을 잡은 뒤의 일이다. 팀 구성원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올포원(All for one)'을 외치는 김용갑 감독 체제에 적응하지 못한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혔다. 김 감독은 지쿠를 불러 앉혔다. "너도 팀의 일원이다. 너만을 위한 팀이 아니다. 나는 전임 감독과 다르다. 동료들과 함께 수비하고 함께 공격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러면서 자존심을 건드렸다. "너는 외국인 선수다. 국내 선수들보다 더 나은 기량을 가졌다고 믿었기에 한국에 영입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너는 특별하지 않다. 네 기량을 입증해 보아라."

28일 탄천종합운동장에서 펼쳐진 성남과의 2013년 K-리그 클래식에 모습을 드러낸 지쿠는 달라져 있었다. 상대 진영 부근을 맴돌던 이전의 모습은 없었다. 페널티에어리어 부근까지 내려와 동료와 협력 수비를 펼쳤고, 직접 역습의 선두에 서면서 공격진을 이끌었다. 이기적인 플레이를 버리고 팀의 일원으로 녹아들었다. 상대 집중 마크 속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전후반 90분을 종횡무진 했다. 이 경기서 강원은 고비를 넘지 못하면서 성남에 0대2로 완패했다. 하지만 희망을 봤다. 그 중심엔 달라진 지쿠의 모습이 있었다. 김 감독도 호평했다. "지쿠가 앞선 경기들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경기력은 좋았다고 본다. 주문한 대로 잘 소화했다."

2년 연속 강등 싸움이 펼쳐져 있다. 강원은 또 생존경쟁의 장에 뛰어 들어야 한다. 다사다난 했던 정규리그의 끝자락에서 본 달라진 지쿠의 모습은 그룹B 일정에서 충분히 희망을 볼 만한 요인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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